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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ㆍ탈법 행위 드러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박근혜 청와대가 기획ㆍ연출 전 과정 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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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ㆍ탈법 행위 드러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박근혜 청와대가 기획ㆍ연출 전 과정 몸통”

입력
2018.03.2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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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2013년부터 3년 간 치밀하게 준비

이병기 前 실장, 비밀TF 지시 등 개입

조사위, 관련자 25명 수사 의뢰키로

 

고석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고석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숱한 논란을 낳고 파행을 거듭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박근혜정부 청와대가 기획부터 여론조작 등 전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비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등 위법ㆍ탈법 행위가 난무했고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청와대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는 하청기관으로 전락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런 내용의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민주적 절차를 무력화하고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교과서 편찬에 개입한 반헌법적ㆍ불법적 국정농단 사건”으로 규정했다.

“靑이 내용 수정까지 깊숙이 개입”

조사위에 따르면 국정 역사교과서 만들기는 청와대 주도로 2013년 중순부터 치밀하게 진행됐다. 그 해 8월 우편향 비판에 직면한 교학사 교과서 논란이 확산되자 박 전 대통령은 10월 교과서 검ㆍ인정 체제 강화를 위한 조직 설치를 지시했다. 이듬해 1월에는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아이들이 편향된 인식을 가져서는 안된다”며 역사교과서 개입 의지를 노골화했고, 여당인 새누리당과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청와대는 처음부터 국정화 외에 대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교육부가 마련한 개선안은 검정체제 강화와 국정화 전환 두 가지였으나 교육문화수석실을 통해 국정화 결정을 종용했다. 조사위는 “청와대 의지에도 국정화 반대 여론이 계속 우세하자 교육부 담당자가 질책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주춤했던 국정화 추진 계획은 2015년부터 본격화했다. 그 해 10월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지시로 비밀 TF가 꾸려져 여당 의원들에게 우호 발언 메시지를 전달하고 민간단체를 통한 집단 행동을 기획했다. 교육부는 국정화 예산으로 44억원을 신청했는데, 승인 하루 만에 절반이 넘는 24억8,000만원이 홍보비로 사용됐다. 청와대가 우호 여론 조성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와대는 교과서 편찬 기준과 내용까지 일일이 통제했다. 청와대가 요구한 21건의 편찬기준 수정 내용 중 18건이 반영됐으며 편찬심의위원 16명 가운데 13명이 위원 선정위원회 추천 순서와 무관하게 청와대 의중대로 결정됐다. 교과서 집필진도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교육부 예비명단을 토대로 추천한 뒤 청와대 낙점을 받는 식으로 이뤄졌다.

국정화 전 단계서 위법 요소 수두룩

박근혜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 붙이기 위해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행정예고 기간 진행된, 이른바 ‘차떼기’ 여론조작이다. 교육부는 2015년 11월 2일까지 국정화 행정예고에 관한 찬반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일괄 출력물 형태의 의견서가 제출됐는데, 동일한 주소로 된 의견서가 1,613건이나 됐고 한 사람이 100장 이상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인적사항란에 ‘이완용, 조선총독부’를 써내는 등 누가 봐도 허위 기재임이 분명한 의견서도 다수 발견됐다. 조사위는 “의견서 667장을 무작위 추출해 제출 여부를 확인한 결과 62%만 찬성 입장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비밀 TF 구성 자체도 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동숭동 국립국제교육원에 마련된 국정화 추진 TF(3개팀 21명)는 청와대 지시 사항을 이행하고 로드맵을 작성하는 핵심 조직이었다. 하지만 한시 조직 설치에 필요한 대통령령을 어기고 인원 차출에 수반되는 기관장 결재조차 없이 졸속으로 강행됐다. .

조사위는 국정화 추진의 몸통으로 지목된 이병기 전 비서실장과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김정배 전 국편위원장 등 관련자 25명을 직권남용과 배임, 수뢰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할 계획이다. 박 전 대통령과 서남수ㆍ황우여 전 교육부장관도 수사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고석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목포대 교수)은 ”유사 사례를 막으려면 초등 국정교과서를 검정제 전환하고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 폐지 등 교과서 발행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사위는 장기적으로 인정제와 자유발행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교과서 발행제도를 바꿀 것을 제안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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