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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칼럼] 멈춰라, 그리고 생각하라

입력
2016.02.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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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러자 정부가 내수활성화에 매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은폐되어 있다. 소비와 부채의 증가 문제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자본주의를 ‘머리가 백 개쯤 달린 변화무쌍한 히드라’에 비유했듯이, 자본주의 성공의 비밀은 끊임 없는 자기변신에 있다. 그 변신의 궤적을 잠시 살펴보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실체가 드러난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산업자본주의’로도 불리는 초기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과 생산 조건의 확립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생산자’로서의 위치를 부여하고, 근면 성실 검소 시간엄수와 같은 노동 윤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기간시설이 완비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생산성이 점차 증가하자, 20세기 후반부터는 ‘소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생산체계가 붕괴될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후기 자본주의’다.

후기 자본주의는 과잉 생산된 상품들을 과잉 소비를 통해 해소함으로써 생존하는 체제다. 때문에 이때부터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로서의 위치를 새로이 부여하고 대중문화를 통해 소비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소비를 애국으로 포장하는가 하면, 신용카드를 발급하여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지출이 가능한 새로운 소비 방식을 열어놓았다. 은행은 다양한 대출상품으로 유혹하고, 언론과 기업들은 자극적인 광고와 변덕스런 유행을 통해 소비를 부추긴다.

초기 자본주의 정신이었던 금욕주의에 맞서 쾌락주의가 대두한 것이 이때부터다. ‘모든 여성들은 공식적으로 쾌락에 초대되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와 같은 ‘68혁명’의 구호들이 그대로 후기자본주의의 강령이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낮 또는 주중에는 금욕주의적 생산자로 ‘죽도록’ 노동하고, 밤 또는 주말에는 쾌락주의적 소비자로 ‘지치도록’ 노역해야 하는 이중 노동과 이중 착취가 이뤄지는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장 보드리야르가 이름 붙인 ‘소비사회’의 풍경이다.

그런데 소비가 이처럼 공공연하게 또한 은밀하게 강요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소비를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모두가 빚진 인간, 곧 사회철학자 마우리치오 라자라토가 말하는 ‘부채인간’이 된다. 부채인간은 자본주의라는 히드라가 ‘금융자본주의’로 다시 한 번 진화하면서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 유형으로서 ‘채무자’라는 세 번째 위치를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채무자는 자유와 존엄을 박탈당한다는 사실에 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어느 직장인이 세일 때 신용카드로 산 명품 옷, 구두, 가방으로 치장하고, 외제 승용차를 몰아 백화점과 카페를 돌며 ‘멋진’ 주말을 보냈다 하자.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그 사람은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위해 몸매와 소비능력을 과시하며 쇼핑과 유흥을 즐긴 것이다. 당연히 문제될 것이 없다. 심지어 내수활성화에 일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소비를 통해서 유지되는 후기 자본주의와 부채를 통해서 성장하는 금융자본주의가 자체생존을 위해 주입한 ‘왜곡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자기도 모르게 소비와 부채를 늘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이제 부채를 갚기 위해 자유와 존엄을 해치는 부당한 요구와 노동을 감내해야 한다.

정치철학자 레오니다스 돈스키스가 적절히 표현했듯이, 오늘날 자본주의가 우리를 길들이는 책략은 ‘자극하고 금지하기’ ‘온갖 성욕을 일깨운 뒤에 그것의 만족을 억압하기’ 그럼으로써 자기 통제력을 빼앗는 동시에 ‘자유와 존엄을 갈취하기’이다. 시쳇말로 ‘어르고 뺨 때리기’다. 바로 그래서 지금 우리의 삶이 이리 고달프며,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그리 비루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자본주의 체제를 송두리째 바꾸지 않는 한 무슨 묘책이 있을까마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멈춰라, 생각하라’는 구급처방을 내놓았다. 체제의 작동에 일조하는 일들을 일단 멈추고, 현실을 냉엄하게 들여다보라는 뜻이다. 개별소비세인하, 이런저런 세일 등, 정부와 기업들이 던지는 미끼가 욕망을 자극할 때마다 필히 떠올려야 할 말이다.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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