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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짜? 관심? 애매한 ‘베를린 구상’ 북한 첫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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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짜? 관심? 애매한 ‘베를린 구상’ 북한 첫 반응

입력
2017.07.15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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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 같은 궤변” 폄훼하고

제재ㆍ대화 병행론도 맹비난

하지만 격 낮춰 내용 물 타고

긍정 평가도 이례적으로 포함

당국자 “조목조목 대화 의제”

15일 취임 뒤 처음으로 최전방 부대를 찾아 군사 대비 태세를 점검한 송영무(왼쪽) 국방부 장관이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군사분계선(MDL)과 25m떨어진 올렛 관측초소(OP)에서 지형 설명을 들으며 서부전선 일대를 살펴보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15일 취임 뒤 처음으로 최전방 부대를 찾아 군사 대비 태세를 점검한 송영무(왼쪽) 국방부 장관이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군사분계선(MDL)과 25m떨어진 올렛 관측초소(OP)에서 지형 설명을 들으며 서부전선 일대를 살펴보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단호한 퇴짜일까, 은근한 관심일까.’ 6일 독일 베를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구상’을 공개한 지 9일 만에 북한이 애매한 첫 반응을 내놨다. 여전히 거칠지만, 모처럼 정성스럽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5일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진로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라는 제목의 개인 명의 논평을 통해 “전반 내용들에 외세에 빌붙어 동족을 압살하려는 대결의 저의가 깔려 있고 조선반도 평화와 북남 관계 개선에 도움은커녕 장애만을 덧쌓는 잠꼬대 같은 궤변들이 열거돼 있다”며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을 폄훼했다.

불평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발표 장소다. 노동신문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 북남 관계 개선에 대한 구상이 있다면 왜 하필 자기 땅이 아닌 남의 나라 땅에서, 자기 민족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밝혔는가”라고 반문하며 “외세에 의존해 모든 문제를 풀겠다는 사대적 근성의 발로이고 외세 지지를 받아 몸값을 올려 보려는 천박한 사고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한반도 통일의 전범이 독일이라는 점도 불만이다. “전형적 흡수 통일인 독일식 통일을 우리나라 통일에 적용해야 한다는 망발은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체제 통일을 공공연히 추구하겠다는 걸 선포한 것이나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제재ㆍ대화 병행으로 평화를 추구한다는 문 대통령의 논리도 공격했다. “마치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따져보면 맥도 모르고 침통 빼드는 얼치기의생을 방불케 한다”며 “평화 파괴의 책임을 모면하고 외세를 부추겨 우리를 무장해제시켜 보겠다는 흉심을 드러낸 가소로운 망발”이라고 성토했다.

비핵화 전제 협상 거부 의사도 재차 확인했다. “남조선 집권자가 한미 양국이 북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다느니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평화 체제 구축에 나설 것이라느니 뭐니 하며 가소롭게 놀아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이다. 신문은 “조선반도 평화 보장의 보검인 동족의 핵을 폐기시켜 보겠다고 무모하게 놀아댈 것이 아니라 미제의 천만부당한 핵전쟁 위협을 종식시키고 침략 장비들을 남조선에서 철폐할 데 대해 용기 있게 주장해야 호응과 박수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건부 대화를 비판하며 남북 교류ㆍ협력에 조건을 붙이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올바른 여건’, ‘적절한 조건’ 등에 대해 “우리의 핵 폐기를 유도하고 압박하는 데 선차적인 관심과 목적을 두고 있으며 대화도 북남 관계도 여기에 복종시키려 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면서도 이산가족 상봉과 민간 교류 제안에 대해선 5ㆍ24 조치 해제나 탈북 여종업원 12명 송환 등을 반대급부로 제시했다.

요구는 분명했다. 군사 훈련이나 심리전 방송 같은 대북 적대 행위 중단이다. 신문은 “북과 남이 떼어야 할 첫 발자국은 북남 관계의 근본 문제인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라며 “첫 출발은 반드시 풀어야 할 근본 문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비난이 논평의 주조(主潮)지만, 종전보다 전향적인 응답으로 볼 여지도 없지 않다.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다. 우선 논평의 길이다. 8,600여자의 장문이라는 사실 자체가 관심의 반영이라는 평가다. 개인 논평으로 격을 낮춰 농도 짙은 비판을 희석한 것도 수위 조절 차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 동안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 기구의 담화나 성명 등을 통해 남측 대통령의 대북 제안에 반응하는 게 통상적이었고 제안 자체를 일축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작은 비중이지만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 선언에 대한 존중ㆍ이행을 다짐하는 등 선임자들과는 다른 일련의 입장들이 담겨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문 대통령의 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목이 포함된 것도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조목조목 거론한 사안들이 앞으로 대화가 재개되면 의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논평이 남측 반응을 살피는 탐색 성격일 수도 있는 만큼, 정부가 27일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을 맞아 먼저 군사분계선(MDL) 확성기 심리전 등 일부 적대 행위를 멈추면 북한도 호응해 오지 않겠냐는 기대 섞인 관측도 나온다.

최전방부대 처음 찾은 송영무 “적이 두려워하는 軍 돼라”

한편 이날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찾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비무장지대(DMZ) 최북단에 있는 올렛 관측초소(OP)에 올라 북한군 동향을 살폈다. 송 장관은 장병들을 격려한 뒤 “적이 두려워하고 국민이 신뢰하는 군대가 될 것”을 주문했다. 최전방 부대 방문은 전날 취임한 송 장관의 첫 군사 대비 태세 점검 행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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