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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알려 줄게"… 시시콜콜 여성 괴롭히는 남자들의 설명病

입력
2015.05.0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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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옥스퍼드 온라인사전 등재

"여자는 모른다"는 전제서 출발

여성이 더 해박해도 무시 다반사

조언과의 차이는 위계 개입 여부

잘 모를 것 같은 여성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싶은 남성의 욕구가 착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다정하고 상냥한 '오빠가 가르쳐줄게'의 태도가 실은 성차별 의식의 소산임을 깨달을 때, 남녀 모두 행복한 양성평등이 가능하다. 게티이미지 뱅크
잘 모를 것 같은 여성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싶은 남성의 욕구가 착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다정하고 상냥한 '오빠가 가르쳐줄게'의 태도가 실은 성차별 의식의 소산임을 깨달을 때, 남녀 모두 행복한 양성평등이 가능하다. 게티이미지 뱅크

#1. “자, 본부장이 뭐냐. 본부장이라는 게 각 파트의 일을 다 알 필요가 없어요. 전체적인 업무의 흐름만 알면 되는 거거든. 우리가 하는 일은 본부장이 해본 적도 없어요. 저는 그분의 까다로운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업무 보고를 할 때 말이에요, ….”

판교 테크노밸리의 IT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희경(31ㆍ가명)씨는 최근 소개팅으로 만난 동년배의 남성으로부터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직장 생활의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 대학원 졸업 후 취직했다는 그는 주선자에게 전해듣기로 올해 직장생활 3년째. 대학 4학년이던 22세 때 입사해 근속중인 김씨는 올해로 9년차다. 게다가 지난해 직속 상사가 퇴직하면서 삼촌뻘 되는 상무와 함께 일한 지 만 1년이 다 돼 간다. 이런 ‘빠꼼이’ 앞에서 소개팅남은 팀장이 연수 간 동안 본부장한테 보고 몇 번 해 본 얘기를 줄기차게 해댔다.

“저도 직장 9년차라 그 기분 잘 알아요.” 김씨의 반격에 잠시 흠칫하던 상대 남성. 그러나 이내 자기도 5~6년차쯤 된다며 별 차이 없다는 투로 나왔다. “제가 방위산업체 경력이 3년 있거든요.” 그의 직장생활론은 내내 계속됐다.

#2. 일본 도쿄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대학원생 임민정(24ㆍ가명)씨는 그곳에서 만난 다른 대학 출신의 남학생 때문에 일년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일본어만 해서는 취업에 승산이 없다”며 영어를 가르쳐주겠다고 끈질기게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임씨는 어린 시절 3년간 미국에서 살다 와 영어가 제2 모국어 수준이건만, ‘그 오빠’는 자신의 미국 체류 경험을 앞세우며 만날 때마다 영어 강의를 해댔다. “이럴 때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지?” 임씨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겉으로는 “하하하” 웃었다.

웃기만 해서 그랬을까. 그의 ‘설명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둘 다 정치학 전공이라 같은 수업을 들었는데, 매번 “알려주겠다”며 과외교사를 자처했다. “이거 내가 한국에서 다 들은 수업이야. 가르쳐줄까?”

솟구치는 짜증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무렵, ‘그 오빠’가 수업시간에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수강을 철회했다는 복음과도 같은 소식. A학점을 받고 무사히 학기를 끝낸 임씨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진다.

“오빠가 알려줄게”… 그대 이름은 맨스플레이너

이런 남자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 요사이 SNS에 범람하고 있다. 맨스플레인(Mansplain)이다. 남자 ‘맨(man)’과 설명하다 ‘익스플레인(explain)’을 합성한 단어로,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행태를 가리킨다. 맨스플레이너들은 여성이 해당 주제에 무지하다는 것을 항상 기본 전제로 삼으며, 심지어 여성이 더 해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결코 가르침을 멈추지 못한다. 2010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단어로 꼽혔으며,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 사전에 실렸다. 호주에서도 201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이 단어를 사전의 공식언어로 등재시킨 공로는 미국 문화비평가 레베카 솔닛(55)에게 있다. 그가 2008년 발표한 에세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가 여성들에게는 심금을 울린 글로, 남성들에게는 심기를 거스른 글로 광범위하게 읽히면서, 맨스플레인이 하나의 문화이자 현상으로 페미니즘 담론 바깥에서까지 격렬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올 봄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가 페미니즘을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한 칼럼으로 방송 프로그램에서 퇴출된 사건 이후 트위터를 중심으로 ‘핫하게’ 거론되고 있다.

“모르는 사람 좀 가르쳐줄 수도 있지”

대기업 과장인 미혼여성 이승은(34ㆍ가명)씨는 옆 부서의 ‘김 과장’에게 매일 맨스플레인을 당한다. 재테크에 특히 관심이 많은 김 과장은 자기가 투자한 상품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시시콜콜 설명하며 “지금이 투자 적기”임을 노상 강조한다. 같은 직급인 데다 이씨도 CFA(국제재무분석사) 3차 시험을 앞두고 있는 터라 재테크에 무지한 편이 아니다. 다만 김 과장만큼 큰 관심이 없을 뿐. 한마디로 ‘안물안궁’(안 물어 봤고, 안 궁금하다)이다.

선량하고 다정한 성품이라 가깝게 지내고 있지만, 항상 자기가 정보 우위에 있다는 태도가 거슬려 이씨가 농담조로 한 마디 쏘아붙였다. “김 과장님, 맨스플레인이라고 아세요?” 이씨의 설명에 김 과장은 부끄러워하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재테크 방법을 공유하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라는 항변을 덧붙였다. 하지만 김 과장은 남성 동료들과는 절대 “좋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남성 동료들은 그 좋은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매사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어느 성별에나 있다. 하지만 레베카 솔닛의 표현을 빌자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감이 넘쳐서 정면 대결을 일삼는 사람은 유독 한쪽 성에 많다.” 여자들도 이따금 남자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지만, “그것은 젠더 간 엄청난 힘의 격차가 악랄한 형태로 표출된 현상이라고는 볼 수 없거니와, 젠더의 사회적 작동방식에 드러나는 거시적 패턴을 반영한 현상도 아니다.” 맨스플레인이 ‘설명충’, ‘꼰대질’, ‘지적질’ ‘선생질’ 등과 명확하게 다른 점이다. 맨스플레인을 작동시키는 힘의 원리는 바로 “성별 권력의 격차”이며, 그 심층 기저에는 여성을 지성, 앎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런 태도가 있다. 맨스플레이너는 “여자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 자체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여자는 모른다”는 기본전제가 틀렸다

자신이 맨스플레이너든 아니든 많은 남성들이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표한다. 남녀간의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는 남성 비하 용어로 받아들인다. 맨스플레이너라는 지적을 김 과장처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경우 자체가 희귀하다. 대부분 “그냥 설명해준 것뿐인데, 그게 왜 맨스플레이냐?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하겠네”라는 반응들이다.

“남자와 여자의 관심분야가 자연스럽게 갈리지 않나요? 야구나 축구, 자동차, 게임 같은 걸 좋아하고 거기에 해박한 여자들은 별로 없잖아요. 관심분야가 원천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대화하는 과정에서 남자가 아는 척하며 가르치려 드는 태도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여자들이 문제 아닌가요? 먼저 자신의 전문성을 당당하게 내보이고 강조한다면 남자들의 그런 행동도 줄어들 겁니다.” 대학원생 남성 김모(27)씨의 항변이다.

“여자들 중에도 가르치려 드는 여자들은 있어요. 출산이나 육아, 패션 같은 화제가 나오면 여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자영업을 하는 36세 남성 강모씨는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경향성을 남성 고유의 결함인 양 매도하는 건 부당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어떤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잘 아는 사람이 쉽게 설명해 주는 형식은 책이나 언론기사, 방송 프로그램, 강연 등 지식 콘텐츠를 전달하는 미디어에서 흔히 차용된다. 얼마 전 발간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의 ‘여성을 위한 야구 설명서’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실제 야구팬의 성별 비중이 현저히 다르고, 지식의 용이한 전달을 위한 상황설정으로 ‘오빠가 알려줄게’ 포맷이 효율적인 것은 사실이다. 상황극이라는 것 자체가 편견에 기대어 캐릭터의 전형을 구축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여성을 위한 야구 설명서’와 ‘딸에게 들려주는 친정엄마의 김장 비법’ 사이에 차이가 무엇이냐는 문제제기는 그래서 나온다.

맨스플레이닝과 조언의 차이를 묻는 이 질문의 답은 그러나 명확히 존재한다. 친정엄마와 딸 사이에는 없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있는 것. 바로 성별의 위계다. 여성들이 오랜 세월 ‘여자가 어떻게 이런 걸 해’라는 편견과 맞서며 여성성의 외연을 넓히려 쏟아왔던 부단한 노력을 맨스플레이닝은 외면한다.

열혈 야구 애호가인 대학생 박희진(25ㆍ가명)씨는 “야구 중계 사이에 나오는 타이어 광고마저 ‘전구 교체할 땐 아빠! 컴퓨터 교체할 땐, 오빠! 타이어 교체할 땐 타이어프로!’라며 맨스플레인을 한다”며 “야구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정말 어이없다”고 개탄했다. 함께 야구를 보러 간 남자친구마저 박씨가 이미 ‘빠삭하게’ 알고 있는 새 아웃 세이프 합의판정에 대해 줄줄이 설명을 늘어놓아 짜증을 불러일으키니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든다.

“여자는 야구를 모른다고 당연시하기 전에 ‘혹시 야구 좋아하니? 한번만 물어보면 될 일 아닌가요?” 또 다른 여성 야구 애호가 이모(29)씨 맨스플레이너들에겐 ‘나는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적 용기가 결여돼 있는 것 같다”며 “대뜸 가르치려고만 들지 말고 여자도 이미 잘 알고 있을 수 있다는 걸 한번만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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