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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연령차별(에이지즘)의 벽을 넘어서

입력
2016.12.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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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하게 명멸하는 촛불들을 바라보면서, 지금 또 하나의 언덕을 넘어 새 시대로 접어들려는 용틀임이 저 불빛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재, 민주화, 지역갈등, 성차별, 빈부 차이, 학력차별까지 수많은 차별철폐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구나. 혼자 생각해 보고 있다.

그 어간에 어느덧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명도 90세를 넘어 언필칭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나 자신 80대에 진입하고 보니, 제아무리 최신의 인생주기를 대입해 봐도 노인이 됐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노인이 되고 보니, 그 초입부터 연령차별이란 가파른 언덕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꽤 가파른 언덕이라 나는 지금 숨이 차다. 곳곳에 연령차별 자국들이 스며 있다. 이 자국들이 내 자아감에 상처를 주고 있고, 나이 먹은 사람들의 위치를 망가뜨리고 있다.

제일 두드러진 점은 사람들의 노인에 대한 이미지가 획일적이다. 이를테면, 처음 사람을 만날 때면 약속이나 한 듯이 비슷한 인사말을 한다. “어쩜 그 연세에 그리 정정하시냐, 아직 일도 하시냐”는 거다.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노인상은 아직도 1960, 70년대, 어쩌면 그 이전 시대에 머물러 있나 보다. 세상은 더구나 우리 사회는 경천동지할 만큼 변화해 왔건만, 노인들만은 변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또 하나, 저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간과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늙으나 젊으나 사람마다 다르게 성장하고 늙어 가는 생활연령이 있다는 점이다.

저들의 획일화된 노인상이 단번에 깨질만한 일화가 있다. 내가 65세는 넘었고 70세 언저리 적의 얘기다. 그 시절은 지하철역 창구에서 일일이 주민등록증을 보이고 나서 하얀 경로승차권을 받아야 했다. 어느 날, 주민등록증을 안 가져갔길래, 나는 역무원에게 65세가 넘었으니, 믿고 경로승차권을 달라고 했더니, 역무원이 “거짓말하지 마시라, 절대 65세가 안 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찌 그리 자신하느냐, 나는 분명 65세가 넘었는데”라고 반문하자, 역무원은 “내 어머니가 바로 그 연세다, 고로 자신할 수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두말없이 나는 돈을 내고 승차권을 샀다. 이 지하철 역무원보다 더 확고한 고정관념을 이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 특히 자신들도 곧 내 나이로 뒤좇아 올 지긋한 나이의 사람들조차 가지고 있으며, 엇비슷한 인사를 내게 건넨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나이 든 사람을 개개인의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노인이라는 집단 전체로 보고, 그 결과 나이 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암묵적 거리를 두게 만든다는 점에서 극히 위험하다.

연령차별이란, 사람의 나이에 근거한 차별 및 고정관념이다. 1969년, 미국 노인 의학자 로버트 버틀러가 처음 ‘연령차별’(에이지즘ㆍAgeism)이란 용어를 썼다. 그 시절로부터 꾸준히 연령차별을 철폐하려 노력하는 선진국에서 배워야 한다. 나이 든 세대를 자기들과 다른 집단으로 치부해 버리고, 그저 영혼 없는 말이나 어린이 다루듯 하는 말투의 인사치레와 칭찬이나 하는 것이 바로 내면화된 연령차별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나이를 속이거나 줄이거나 침묵하기보다는 우선 내 나이부터 밝히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고 나이 드는 것에서 도망을 치듯 내 나이를 줄인다거나 밝히지 않는다면, 나 역시 연령차별의 공범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내 나이를 인정하고, 내 나이에 자부심을 갖는 게 바로 풍요롭고, 깊이 있고, 소중함이 충만한 올바른 ‘나이 듦’(Agefulness)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는 노인이 되기 위한 수련을 하는 중이다. 동시에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연령차별을 허무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 모두가 나이 들고 있다. 그러므로 연령차별에 종지부를 찍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고 필수적이다.

고광애 노년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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