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번개 참석 강요하고
주말에 업무 지시하는 상사
일부 젊은 선배까지 만행 답습
서로 “꼰대” “무개념” 불신
짜증 유발 넘어 사내 소통 저해
결국 기업 경쟁력 갉아먹어
“이 과장: 부팀장님 말씀에 아무도 답이 없네요.” 오후 10:43
3년 차 직장인 박모(34)씨는 23일 밤 10시43분에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황당한 메시지를 읽었다. 10여분 전 부팀장이 실적과 관련한 질책성 메시지를 남겼고, 채팅방에 들어와있는 8명 중 4명만 이에 응답했다. 그러자 과장이 팀원들의 ‘읽씹’(카카오톡 메시지를 읽고서도 답을 하지 않는 상황)을 지탄하는 글을 남긴 것이다. 박씨는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에 메시지를 보낸 부팀장도 이해가 안 가지만, 그 늦은 시간에 대답을 안 했다고 질책하는 과장이 더 어이가 없었다”며 “군대에서나 볼 법한 꼰대 문화가 만연해있다”고 말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30세대 직장인들이 ‘꼰대 문화’에 시달리고 있다. 젊은이들은 군대를 연상케 하는 절대복종 문화,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회식 강요, 권위주의에 빠져있는 상사 등 21세기 직장에 구시대 문화가 상존한다고 말한다. ‘굉꼰’(굉장한 꼰대), ‘젊꼰’(젊은 꼰대) 등 신조어도 등장했다. 젊은이들은 한국사회 특유의 꼰대 문화야말로 ‘헬조선’(한국은 지옥 같은 나라라는 은어)의 필수 구성요소라고 자조한다.
대기업 사원으로 근무하는 유은영(29ㆍ가명)씨는 일주일에 2, 3차례 태스크포스(TF)팀을 조직한다. 유씨가 만드는 TF팀이란 부장의 술자리 번개에 참석할 인원들을 뜻한다. 부장이 퇴근시간 직전 “오늘 얼큰한 거 먹으러 갈래?”라고 유씨에게 한마디를 건네면 그가 십자가를 지고 부서원 몇몇을 차출해 함께 따라나서는 식이다. 유씨는 “회식을 고지한 것도 아니고 본인 기분 내킬 때마다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해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당사자는 이를 친목과 소통을 도모하는 활동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난 달에는 미리 식당에 가 있으라던 부장이 20여분 뒤 “상무님이 밥 먹자고 하셔서 거기 가야 할 것 같다”는 문자를 보냈다. 당시 자리에는 요가 강좌를 취소한 사람, 1년 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깬 사람, 데이트를 파투 내 여자친구와 다툰 사람 등이 참석했다. 유씨는 “다음날 부장이 출근하자마자 ‘나 빼놓고 너희들끼리 맛있는 것 먹으니 좋으냐? 오늘 제대로 다시 뭉치자’라고 말해 실소가 나왔다”며 “부장은 진심으로 부서원들이 술자리와 회식을 좋아한다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식을 강요하는 상사는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다. 젊은 직장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꼰대 유형은 부하직원의 휴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상사들이다.
회사원 김하나(32ㆍ가명)씨는 19일 모처럼의 정시 퇴근으로 들떠 있었다. 오래간만에 ‘불금’을 즐길 수 있다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사무실 문을 나서자마자 기운이 쭉 빠졌다. 직장 상사로부터 “보고서는 월요일까지 제출하도록”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자신보다 일찍 사무실을 나서는 부하직원의 모습에 못마땅한 눈초리를 보내더니 어김없이 보복을 한 것”이라며 “주위 친구들도 주말을 끼고 업무를 지시하는 상사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하소연했다.
더욱 큰 문제는 꼰대 문화가 답습되고 있다는 점이다. 2030세대들은 불과 몇 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직속 상사들의 만행이 더 꼴불견이라고 지적한다. 중견기업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김진철(28ㆍ가명)씨는 “본사 승인이 필요한 업무를 진행 중이었는데, 고작 2년 먼저 입사한 타 부서 선배가 ‘이게 맞니? 확인은 한 거니? 이전 프로젝트는 체크했니?’ 등 메신저로 30분쯤 질문을 쏟아 부었다”며 “대화 말미에 ‘네가 처음 왔다고 해서 제대로 알고 진행하는지 궁금해서 한 번 물어봤어^^’라고 덧붙여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부에 있는 본인 동기한테 ‘야, 내가 진철이 단단히 교육시켜놨다”고 자랑까지 했다”며 “왜 굳이 본인과 상관 없는 일에 끼어들어 훈계하려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2030세대들은 직장 내 꼰대 문화의 폐해가 단순히 짜증 유발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내 소통을 가로막고 종국에는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인으로 작동한다는 의미다. 실제 올해 2월 취업포털업체 잡코리아가 직장인 3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9%가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다’고 답했고, 그 이유로 ‘수직적인 조직문화’(48.1%)를 가장 많이 꼽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6월 ‘기업문화와 기업경쟁력 콘퍼런스’참가자 500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91%)이 ‘현재 기업문화로는 경쟁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답하기도 했다. 당시 콘퍼런스에 참가했던 기업컨설팅업체 맥킨지코리아의 최원식 대표는 “‘하면 된다’ 정신으로 무장한 임원급 세대는 젊은 세대를 무개념이라 무시하고, 삶의 질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는 임원급 세대를 꼰대라 불신한다”며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개선해 경쟁력 있는 경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 이 사람 꼰대일까? ‘꼰대 감별법’
일상에서든 직장에서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존재가 꼰대다. 제대로 피하려면 제대로 알아야 하는 법. “이 사람 꼰대일까” 고민하는 당신을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범람하는 각종 정보와 창의리더십센터에서 나온 보고서 내용을 종합해 꼰대감별법을 요약했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만고불변 진리”
자신이 대접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어 안달하는 게 꼰대의 대표적 특징이다. “내가 누군 줄 알고”가 가장 상투적인 접두사. 상대방이 자기보다 어리거나 직급이 낮으면 반말로 명령하듯 말한다. 3년 전 비행기에서 식은 라면 대령했다고 승무원 뺨을 때린 ‘라면 상무’가 대표 사례다.
강압적 분위기는 생각 못 하고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요구하다 못 이기는 척 결국 본인이 정답을 제시하는 것도 특징이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부하직원을 답답해 하며 “~란 ~인 거야”라는 진리명제 화법을 구사하는 식. “나 때는 말이야~”도 빠지지 않는다.
남이 하면 ‘오지랖’ 내가 하면 ‘인생 조언’
꼰대들에겐 부하직원 인성 교육도 자기 소관이다.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 각종 예절도 업무 일환이니 가르치고 고쳐줘야 직성이 풀린다. 인생 설계도 마찬가지. 연애사와 자녀계획은 인생 선배로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 줄 분야라 생각한다. 자녀를 낳지 않는 부하직원을 ‘걱정’하고, 결혼하지 않는 부하직원을 ‘안쓰러워’ 하는 게, 무례를 다정으로 착각하는 꼰대들의 특징이다.
‘꼰대’와 ‘아재’는 다르다
꼰대와 아재를 헷갈리지 말자.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소통하려는 자세다. 명령하고 지시하는 대신 자신을 낮춰 상대와 소통할 준비가 됐다는 점에서, 아재는 꼰대와 다르다. “조기는 축구할 때 먹어야 제 맛이죠”(유해진), “전 가지고 고민하는 걸 ‘전전긍긍’이라 하죠”(오세득)라며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웃음을 노리는 식이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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