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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관객이 없으면 무대도 배우도 없다

입력
2017.09.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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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모임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모임의 이름은 미래살롱. 미래예측에 관심이 많은 필자와 살롱문화에 꽂혀있는 죽마고우의 콜라보로 붙여진 이름이다. 모임을 주관하는 김피디는 어릴 적부터 재미있는 것을 좋아했고 노는 데 대한 나름의 소신과 철학도 갖고 있다.

요즘 우리는 살롱의 매력에 빠져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살롱이나 마담이란 말이 다소 퇴폐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 프랑스에서 18세기에 꽃폈던 살롱문화는 교양 있는 고급문화다. 대표적 살롱으로는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드 퐁파두르 후작부인 살롱을 들 수 있다. 문학, 예술, 사상을 논하며 교류하던 사교모임이었다. 마담 드 퐁파두르는 계몽철학에 관심을 가져 디드로, 달랑베르의 백과전서 편찬을 지원했고, 몽테스키외도 이 살롱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우리 모임도 이런 품격 있는 살롱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하고 기타 치며 즐기는 모임이다. 얼마 전 고교 동창인 작곡가 겸 지휘자를 모임에 초청했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12년 간 작곡, 지휘를 정통으로 공부했고 유럽에서의 연주 지휘 경력도 풍부한 베테랑이다. 그는 이탈리아 국립음악원 시절 유창하지 않았던 이탈리아어 때문에 곤경을 겪은 에피소드를 비롯해 자신의 오페라 인생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학창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지만 결국 그가 음악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열정과 노력 덕분이다. 그의 말 중에서 제일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의외의 이야기였다. 뮤지션과 무대보다 중요한 것이 관객이고, 관객의 질이 무대의 질을 좌우한다는 말이었다.

오페라, 오케스트라도 공연예술인지라 무대, 배우(뮤지션), 관객을 3요소로 꼽는다. 오페라 하면 우리는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 오페라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 같은 사람을 떠올린다. 훌륭한 작곡가나 가수는 재능과 열정을 가진 뮤지션이다. 평론가들은 그들의 음악세계와 예술적 완성도, 공연의 감상 포인트 등에 대해 해설한다. 하지만 관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관람하고 즐길 관객이 없으면 무대도 배우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오케스트라의 감동은 평론가나 동료예술가가 아니라 관객의 몫이다. 아무리 훌륭한 연주, 화려한 무대라도 관객의 질이 낮으면 감동이 일어날 수 없다. 결국 관객의 질이 공연의 질을 결정한다. 공연의 품격은 평론가의 해설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는가로 판명된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관객의 애정과 소양은 예술창작자의 활동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술은 예술가가 관객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창작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다. 관객에게도 자질이 필요하다. 전문가나 평론가의 일방적 해설을 통해 예술을 소극적으로 감상할 게 아니라 스스로 예술적 식견과 소양을 높여 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일하는 과학계에서는 연구개발(R&D)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과학에 관심을 갖고 즐길 토양을 만드는 과학문화가 매우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같은 맥락이다. 예술가는 문화예술의 공급자고 관객은 수요자다. 수요가 없는데 공급이 있을 수는 없다. 시장경제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같이 활성화돼야 호황을 누릴 수 있다. 정책 측면에서 보면 예술창작자를 양성하는 공급정책과 대중의 문화예술 소양을 높이는 수요정책이 똑같이 중요하다. 좋은 관객이 좋은 공연을 만들고 훌륭한 시민이 훌륭한 민주주의를 만든다. 생각해보면 민주주의의 완성도도 정치제도, 정치인, 정당의 수준보다는 시민의 정치의식과 민주적 소양에 달려있다. 촛불시민혁명을 가능케 한 것은 정치인들의 리더십이 아니라 시민의 민주적 소양과 참여의식 아니었던가.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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