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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어머니만요? 당번 하나 더 맡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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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어머니만요? 당번 하나 더 맡으세요”

입력
2018.03.26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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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증후군 시달리는 엄마들

#총회ㆍ상담주간ㆍ공개수업 등

학부모 참여 분야 늘며 스트레스

한 구인 애플리케이션에 학부모들의 녹색어머니, 교통봉사 대행 문의 글이 게재돼 있다. 앱 화면 캡처
한 구인 애플리케이션에 학부모들의 녹색어머니, 교통봉사 대행 문의 글이 게재돼 있다. 앱 화면 캡처

‘서울 동작구 OO초교 앞에서 오전 8시 20분부터 40분 간 녹색어머니 대행해주실 분 구해요. 2만5,000원 드립니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직장맘’인 조선아(36ㆍ가명)씨는 최근 같은 반 학부모에게 소개 받은 구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녹색어머니 대행’을 찾고 있다. 자녀 학교에서 지난해부터 학부모의 녹색어머니회 참여를 의무화했는데, 반 학생 수가 적어 1년에 세 차례 이상은 순번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학기 초 학부모 총회나 담임교사 상담 등 주요 일정까지 챙기려면 매월 한 차례씩은 연차휴가를 신청해야 한다. 조씨는 25일 “초등 5학년인 둘째 학교 일정도 챙기려면 눈코 뜰 새가 없다”며 “직장 동료들에게 매번 양해를 구하기도 눈치가 보여 학기 초마다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학기 초 엄마들의 ‘새학기 증후군’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학부모 참여 분야를 확대한 학교가 늘면서 자녀보다 더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맘은 학교와 회사 사이에서 눈치를 보느라, 전업주부는 교사와 학부모가 뻗는 ‘도움의 손길’을 피할 수 없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학부모 총회, 상담주간, 공개수업 등이 줄줄이 잇따르며 학교에 쏟는 시간이 많아지는 3월은 학부모들 사이에선 ‘엄마의 달’로 불린다. 특히 직장맘들은 근무 시간에 학교 일정이 진행되다 보니 참여가 어려운데도 ‘자녀 교육에 관심 없는 엄마’로 낙인 찍힐까 봐 노심초사 하고 있다. 서울의 초3 학부모 최모(43)씨는 “최근 정부에서 저녁 상담을 늘린다고 해 기대를 했지만, ‘칼퇴근’을 하고 학교에 가도 오후 7시인데 상담까지 마치면 늦게까지 담임교사를 붙들어 둬야 하는 상황이라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실제 지난 20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게시판에 ‘학부모 참여 행사는 모두 저녁 7시 이후로 바꿔달라’는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무관심 부모 낙인 찍힐까 눈치

많게는 한 달에 3번 학교 출동”

2만~3만원 대행 알바까지 동원

최근에는 대부분 학교들이 녹색어머니회, 어머니 폴리스(학교 방범 활동), 독서지도단, 급식모니터링단, 학부모 임원단 등 다양한 명칭으로 학부모 참여를 늘리면서 직장맘들의 걱정이 더욱 커졌다. 온라인 맘카페에선 ‘녹색어머니회 품앗이’가 일상화한 지 오래고, 구인 앱에는 녹색어머니 대행 문의 글도 잇따르고 있다. 40분 안팎 교통안전지도에 2만~3만원 정도로 거래가가 책정돼 있다. 조선아씨는 “단순업무인 녹색어머니의 경우 학부모 10명 중 2, 3명은 가족이 아닌 지인이나 아르바이트생을 보낸다고 한다. 시급이 꽤 되지만 학교에 못한다고 말하는 것보단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전업주부라고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급 대표나 대청소 모임 등 맞벌이 부모가 부득이하게 메우지 못하는 몫을 대신 채워달라는 직ㆍ간접적 요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 일산 초4 학부모이자 전업주부인 김모(43)씨는 “담임 선생님이 넌지시 ‘녹색어머니회, 어머니폴리스 등 당번을 2개 이상 맡아달라’고 요구하면서 많게는 한 달에 세 번씩 학교로 출동하는 전업주부들도 많다”며 “학부모 참여 제도를 무작정 확대하는 대신 지역 노인이나 봉사단체 등을 활용하는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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