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여당 갈등 보도
유승민 정국 상황 요약 잘했지만, 취재 대상 실명 공개도 주저 말아야
주말판 H 기획
대학가 학보·대안학교 문제 인상적, 난해한 편집은 2% 모자란 느낌
한국일보 기사의 독자 권익 침해나 편집 방향 등을 살피는 독자권익위원회 7월 회의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와이즈타워 18층 한국일보 회의실에서 열렸다. 독자권익위원들은 이날 회의에서 지난 한 달 동안 주요 사건이었던 ▦청와대와 여당 갈등 ▦그리스 사태를 중심으로 한국일보 보도를 심의, 평가했다.
회의에는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권광중 위원장을 비롯해 최창렬 용인대 교수, 지평님 황소자리출판사 대표, 주부 정희수씨, 학생 윤여진(경희대) 변은샘(가톨릭대)씨 등 독자권익위원들과 한국일보에서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진성훈 편집위원이 참석했다. 논의 내용을 정리했다.
지평님= 한국일보는 거의 매일 2, 3개 면을 할애해 청와대와 여당 간의 불협화음을 다뤘다. 보름 가까이 집중 보도를 지켜보면서 이번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유승민 의원이 가장 큰 수혜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에게 일방적인 희생자 레토릭을 입혀주는 경향이 강하다고 느꼈다.
그리스 사태는 시시각각 변하는 협상 분위기, 유로존 한계, 국민투표 스케치 등을 잘 다뤘지만 혹독한 IMF를 겪은 한국 독자들이 정작 궁금해 하는 내용들이 빈약해 많이 아쉬웠다. 그리스의 산업구조 및 경제기반은 어떤 상태인지, 한국일보 보도대로 실물경제 통합 이전에 서둘러 진행한 유로존 화폐통합이 그리스 사태를 촉발한 주범이라면 왜 동유럽이나 서유럽의 작은 국가들이 아니라 그리스에서 이 문제가 불거졌는지 등이다. 또 종전 IMF와 유로존이 제시한 그리스 긴축정책이 1998년 당시 우리나라에 적용됐던 혹독한 조치에 비해 어떤지, 그리스 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등도 궁금했다.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한국일보는 ‘누가 한국문학을 죽였나’라는 기획을 내보냈는데 공들여 쓴 기사지만 그 기사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감정이입할 사람이 있을까 할 정도로 현실감이 떨어지는 문단, 문학계, 소설가, 평론가들의 얘기만 썼다. 마치 1990년대 불붙었던 문학논쟁을 새삼 다시 꺼내 읽는 듯한 착시감마저 들었다.
최창렬= 이른바 유승민 반란은 진압되었고, 언론 대부분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했다. 한국일보도 이 사안을 잘 다뤘다고 생각한다. 한국일보가 중도를 추구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재창간선언을 계기로 한 지면 개편 이후 사설과 칼럼의 비판 수위가 상당히 약해진 감이 있다. 전반적으로 비판이 날카롭지 않고 핵심을 찌르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사설에서 문장 어법이 맞지 않다거나 조사가 누락돼 독자들의 신뢰감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3일자에는 야당의 ‘김상곤 혁신안’에 대한 기사가 없었다. 중요한 이슈였음에도 빠졌다. 반면 한일수교 50주년기념 한일의원 친선바둑 교류 행사에 참석한 새누리당 김무성대표와 원유철 정책위의장 사진은 너무 크게 실렸다. 4일자 ‘다문화 2세들 이유 있는 방황’이라는 기획 기사 제목이 너무 작아 눈에 안 들어온다. 역시 기획인 11일자 ‘대학가 언더 학보’기사도 마찬가지다. 내용을 어떻게 잘 포장하느냐가 중요하므로 편집에 신경을 써야 한다. 편집에서 항상 2%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변은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과 관련한 일련의 기사에서 부제나 상황 요약이 잘돼 사건 전개에 대한 이해를 도와줬다. 지난달 27일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과에도 냉담한 청와대의 입장과 김무성 대표의 현 위상에 대해‘절반의 승리 박 대통령’‘유승민은 아직 지지 않았다’ ‘김무성의 손익은 물음표’ 등 부제로 설명해 놓은 것이 좋은 예다. 앞으로도 부제로 주요인물들의 처지나 사건 요약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좋겠다.
같은 날 ‘박 대통령 탈당? 무슨 소설 같은…’ 기사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전격 탈당하고 신당을 만든다는 시나리오가 호사가들 사이에 거론되고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호사가들 사이에 거론되는 얘기까지 기사화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조금 의아했다.
지난달 회의에서 낯선 용어에 대한 부가 설명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이번 그리스 보도에서 Q&A를 만드는 등 기본적 배경 설명을 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더 나아가 생소한 용어들에 각주를 달아 필요한 설명들을 해준다면 읽기에 더 수월할 것 같다. 1면에서 주요 사건들을 간단히 보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 2면으로 넘어가면 ‘오늘 바라보기’가 나와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든다. 배치를 다르게 해 읽기에 흐름이 끊기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정희수= 지난달 25일에 병원에 가서 우연히 여러 신문이 놓여 있는 걸 봤다. 다른 신문은 대부분 6ㆍ25 관련 기사를 1면에 썼는데 한국일보만 1면에 메르스를 다뤘다. 이런 날까지 타 신문들과 달리 혼자 가는 게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주부라서 그런지 토요일자 H 커버스토리가 인상 깊었다. 대안학교 문제의 경우 졸업한 아이들 인터뷰 기사와 경기불황 속 보이스피싱범죄 예방법을 소개한 기사도 좋았다. 또 아이들의 성적보다 ‘인성을 키워라’는 메시지를 준 부분도 눈에 띄었다. 스포츠면 사진이 확 좋아진 느낌도 받았다.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손연재 선수의 연속동작 사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앞선 회의에서 나왔던 사진 게재에 대한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그리스 사태는 아무래도 우리 과거와 겹치는 부분이 있으니 IMF 때와 비교해서 나눠 정리해 보여주었다면 더 현실성 있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3일자 1면에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특별수사팀의 문무일 팀장(대전지검장) 뒷모습만 길게 담은 사진을 실은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했다.
윤여진=‘유승민 정국’에서는 정치인 익명 보도가 아쉬웠다. 취재원이 아닌 취재 대상까지도 익명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지난달 27일자 신문에 전날 새누리당 의총에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한 사람들은 4, 5명에 불과했다고만 나왔다. 이미 해당 의원들의 실명이 공개된 상황이었고 타사는 이름을 적시했다. 6일자 기사의 ‘20인 반대 성명’중 실명이 공개된 것은 김용태 의원뿐이다. 성명에 참여한 의원의 이름을 기사 하단에 별도로 소개했으면 ‘유승민 정국’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독자로서는 정작 ‘친박’‘비박’이라는 커다란 이름보다 특정 입장을 취한 정치인 개개인의 이름이 더 중요한 정보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이후 국회법 개정안 처리 예상 상황을 그래픽 등에서 주요한 포인트가 빠지는 등 허술한 경우가 더러 눈에 띄었다. 6월26일 유승민 원내대표의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대통령에게 진 여당 원내대표’라는 그림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 정국은 유승민의 정치소신을 널리 알려 호감도와 인지도를 높인 계기였다. ‘유승민’의 사과는 권력 다툼에서 패한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한 숨 고르기로 볼 수도 있다.
권광중= 지면에 대해 언급할 때 편집권을 침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독자 입장에서 신문을 읽으면서 잘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없는지, 보도를 통해 누군가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를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난달 20일자 국회법개정안과 관련, ‘월권 아닌 절차적 정당성 지키겠다는 것…얼렁뚱땅 법안 처리 막겠다’ 기사는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을 인터뷰한 것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수정안을 여야 원내대표가 받아들여 정부 이송을 눈 앞에 뒀던 개정 국회법에 대해서도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며 지연시켜 국회를 술렁이게 했다”고 했는데 그가 국회법 이송과정에서 이의 제기를 한 내용, 즉 그가 말하는 절차적 정당성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날 자 ‘삼포세대에 자존감 가져라 토닥토닥’은 제목에서 ‘삼포’의 의미가 빨리 전달되지 않았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 제목 아래 작은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같은 날 ‘아몬드 모양의 눈과 긴 목, 아프리카에서 왔어요’라는 미술 전시 기사는 맨 아래 안내 전화번호를 (02)1588-2618로 적었는데 (02)를 넣은 건 오류다. 그리고 전화번호보다는 전시회 홈페이지를 적어주면 독자에게 더 편리할 것이다.
이계성= 지면 개편 후 한 달이 지났다. 전반적인 틀은 새로워 보인다는 느낌은 있지만 콘텐츠 면에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인력 문제가 따르는데, 전체적인 역량을 키워서 충실한 지면을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국일보의 보도 방향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관점, 보수적인 관점에 따라 평가 다를 수 있다. 한국일보는 중도언론으로서 균형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추구한다.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깊이 있게 보도해 사안의 실체를 독자들에게 알리겠다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 방향에서 한국일보가 잘 하고 있는지 자유롭게 말씀해주면 좋겠다.
진성훈= 유승민‘박 대통령 탈당? 무슨 소설 같은…’ 기사는 화제에 오르는 것을 아주 무시할 수 없어서 다룬 경우다. 지적한 대로 6월 25일자에 6ㆍ25 관련 기사를 적극적으로 지면에 반영하지 못한 부족함이 있었다. ‘삼포’ 등 기사 속 용어설명은 최대한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정리=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김새미나 인턴기자 saemi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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