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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리콜을 기회로… 4차산업혁명 운전대 잡다

입력
2017.12.02 1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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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다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토요타 제공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토요타 제공

“사고를 당한 토요타 차량 운전자들에게 너무나 죄송합니다.”

2010년 2월 24일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일본 토요타(豊田)자동차의 토요다 아키오(豊田章男ㆍ61ㆍ이하 아키오) 대표이사 사장이 고개를 떨궜다. 아키오 사장은 3시간에 걸친 청문회에서 토요타 차량 급발진 결함을 인정하고 미국 소비자에게 피해보상을 약속했다.

일본에서 이날은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자국 최고 기업이 미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죄한 굴욕의 날로 기록됐다. 아키오 사장 자신에게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토요타가 재기하는 전환점이었다.

삼재(三災)를 극복한 오너가 리더십

미 의회 청문회가 열리기 8개월 전인 2009년 6월 아키오 사장은 토요타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당시 그의 나이는 53세. 토요타 창업자인 토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의 친손자로, 재벌 3세인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나이였다.

아키오 사장이 취임한 2009년은 토요타가 1937년 창업한 이래 최악의 해였다.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제유가 상승으로 차량 판매가 급격히 감소했다. 토요타는 2009회계연도(일본 회계연도는 전년 4월~이듬해 3월)에 4,600억 엔(당시 약 5조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 1위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온 토요타로서는 사상 처음 경험한 적자였다.

더 심각한 위기는 그 해 8월 시작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속도로에서 토요타의 고급브랜드 렉서스 차를 탄 일가족 4명이 급발진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가속페달 결함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자 궁지에 몰린 토요타는 결국 미 의회에서 머리를 숙이는 곤욕을 치렀고 이듬해까지 전 세계에서 무려 1,000만대 리콜(결함시정)이란 철퇴를 맞았다.

벼랑 끝까지 몰린 아키오 사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 제너럴모터스(GM)를 꺾기 위해 매년 생산량을 100만대씩 늘려온 양적 성장 전략의 한계를 절감했다. 필요한 수량만 제때 만들어 재고 부담을 최소화하는 토요타의 획기적인 생산방식 ‘저스트 인 타임(JIT)’도 쌓여가는 악성 재고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아키오 사장은 ‘고객제일주의’란 초심으로 돌아가 숫자(판매량)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국내외 생산라인 재배치와 직원 교육 등 품질 향상에 전념했다. 고장이 잘 안 나는 차를 대량으로 만들던 시대와 작별하고 본격적으로 소량 다품종 생산체제로 변신한 것이다. 토요타가 2015년 선포한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전사적 구조개혁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의 원형은 이즈음 태동했다.

그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약 6개월 만에 1,000만대 리콜을 마무리했고 1년 만에 생산라인 재정비를 끝냈다. 2011년 3월 11일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이 덮쳐 일본 내 공장이 멈추고 부품업체들까지 피해를 보는 시련이 닥쳤지만 재구축된 토요타 품질경영 시스템을 주저앉히진 못했다.

급속한 체질개선에 성공한 토요타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연간 판매량 1,000만대 돌파란 금자탑을 쌓으며 업계 1위에 등극했다. ”검증 안 된 창업자 3세”란 회사 안팎의 우려는 “오너 경영의 진가를 보여줬다”는 찬사로 바뀌었다. 8년이 넘은 지금까지 토요타의 CEO로 건재하다는 게 그의 능력을 입증한다.

지난 2015년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서 직접 경주에 참여한 토요다 아키오(왼쪽) 사장. 토요타 제공
지난 2015년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서 직접 경주에 참여한 토요다 아키오(왼쪽) 사장. 토요타 제공

‘거인’을 다시 일으켜 세운 혁신의 DNA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아키오 사장은 여느 재벌 3세들처럼 자국 명문대를 거쳐 미국 경영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토요타 입사는 1984년이지만 경영수업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 전통을 충실히 따라 생산부터 제품개발, 영업에 마케팅까지 밑바닥부터 두루 현장 경험을 쌓았다.

1998년 GM과 토요타가 설립한 조인트벤처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했고, 오세아니아 중동 중국 아시아본부장 등을 거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감각도 키웠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완성차 업체에서 아키오 사장은 소탈하고 권위적이지 않은 성품의 CEO로 알려져 있다. 격렬한 카레이싱을 즐기고 신차는 일일이 시승을 한 뒤 데이터로 표현할 수 없는 차의 감성을 개발팀에게 전달한다. “운전대를 직접 잡는 게 차를 만드는 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금은 주변의 만류로 중단했지만 몇 년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24시간 쉬지 않고 달리는 ‘뉘르부르크링 24시’에 모리조란 가명으로 참가해 직접 운전대를 잡기도 했다.

2012년 한국에 왔을 때는 최고급 렉서스가 아닌 토요타의 7인승 미니밴 시에나를 타고 다녔다. 경영진과 함께 이동하며 회의 시간을 줄이는 등 효율성을 따졌다.

격식보다 도전과 변화를 중시하는 아키오 사장의 성향은 토요타 경영과도 연결됐다. 한화로 약 1조 원을 투입해 2015년 미국에 인공지능(AI) 부서 ‘토요타 리서치 인스티튜트(TRI)를 설립했고 자율주행차를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AI) 컴퓨팅 분야 선도기업 엔비디아와 손을 잡았다.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는 가장 빨리 4차 산업혁명 시대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2014년 12월 출시된 세단형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도 아키오 사장이 완성한 작품이다. 토요타는 미라이 출시와 함께 수소전지 특허 5,580개를 전 세계 자동차업계에 전면 개방해 더욱 놀라움을 안겼다.

아키오 사장은 자율주행차의 효과적인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10억 달러의 연구기금을 조성해 미국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에 연구과제를 위탁하고 있다. 일본 내 부족한 혁신자원을 외부에서 조달하기 위한 포석이다. 자동직기로 성공한 뒤 모두가 미친 짓이라는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어 오늘날의 토요타를 일군 토요다 가문의 ‘끊임없는 카이젠(개선)’ 유전자(DNA)는 그의 몸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 모토마치 공장에서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가 출고되고 있다. 토요타 제공
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 모토마치 공장에서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가 출고되고 있다. 토요타 제공

생사를 결정할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

토요타는 올해 초 ‘불가능을 시작하라(Start Your Impossible)’는 조직문화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일본 본사뿐 아니라 한국법인을 포함한 전사적인 캠페인이다. 자동차의 동력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자동차의 개념이 소유에서 공유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는 시기에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아키오 사장의 치열한 위기의식이 투영됐다.

올해 6월 14일 열린 토요타 정기 주주총회에서 아키오 사장은 “테슬라와 중국 자동차 업체, 구글 등이 뛰어들며 게임의 규칙이 변했는데 우리는 지나치게 수비에 주안점을 두었을지 모른다”는 자기반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본사 정기 임원인사를 발표하며 토요타는 아키오 사장의 의미심장한 발언을 언론에 전했다. 그는 “자동차 업계가 100년에 한 번 있을지 모를 대변혁의 시대에 진입했다. 이제는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벼랑 끝 싸움이 시작됐다”고 토로했다.

토요타 그룹이 가진 힘을 결집해 변화에 맞서겠다는 의지도 강조했다. 아키오 사장은 “고객 우선주의를 마음에 담고 ‘현지현물’(現地現物ㆍ현장에 답이 있으니 현장에 가라는 토요타 내부 용어) 관점에서 다음 100년에도 모든 사람에게 이동의 자유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모빌리티를 만들자”고 촉구했다.

야구에 비유하면 아키오 사장은 7회 무사 만루의 위기에 구원투수로 등판해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은 뒤 8회에서 던지고 있는 셈이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에겐 승부를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9회가 다가오고 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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