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문선 기자

등록 : 2017.04.19 04:40
수정 : 2017.07.05 09:30

[최문선의 욜로 라이프] '호모 피크니쿠스'가 즐기는 스마트 피크닉

소풍도 우아하게.."준비할 수록 즐겁다, 봄을 누리자"

등록 : 2017.04.19 04:40
수정 : 2017.07.05 09:30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피크닉 장면. 영화 화면 캡처

운명이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다룬 고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은 하루가 지나면 영영 못 볼 처지다.

둘은 미국 아이오와의 넓고 푸른 들판에 피크닉 매트를 펴고 앉아 마지막 오후를 즐기며 기품 있는 이별 의식을 치른다.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풍 장면 아닐까.

곧 헤어지는데 무슨 돗자리를 까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피크닉, 즉 소풍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보길 권한다. 계곡에서 소주에 삼겹살 구워 먹다 싸움으로 끝나기 일쑤인 소풍, 김밥 도시락 먹기와 수건 돌리기를 마치면 할 게 없어 서성이다 돌아오는 소풍은 옛말이다. 소풍도 우아할 수 있다. 날씨 좋은 날 경치 좋은 곳이면 어디서든 자리를 펴고 뒹굴뒹굴하는 유럽식 피크닉 전성시대다.

‘호모 피크니쿠스(피크닉 즐기는 인류)’의 계절이 왔다. 미세먼지가 무섭긴 하지만, 내내 실내에 틀어박혀 있기엔 다시 오지 않을 2017년의 봄이 아깝다.

1분 1초도 소중하게…스마트 피크닉

호모 피크니쿠스(피크닉을 즐기는 인류)의 계절이 왔다. 왼쪽부터 인스타그램 아이디 ji__an, jonyjelly, sonia.go.go

사실 돗자리만 있으면 된다. 피크닉의 본질은 하늘을 이불 삼아, 바람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벌러덩 누워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니까. 나무 그늘과 풀밭, 편의점, 화장실을 갖춘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주말마다 이 공원 저 공원 다니는 ‘피크닉 크롤(Picnic Crawlㆍ피크닉 순례)’도 가능하다.

그래도 이왕이면 영리하게 놀아 보자. 조금만 준비하면 돗자리 크기만한 ‘나만의 지붕 없는 방’을 차릴 수 있다. 야외에선 뭐니뭐니 해도 먹고 마시는 재미가 최고. 특히 맥주 없는 피크닉은 상상할 수 없다. 집에서도 마시는 1만원에 네 개짜리 편의점 캔맥주로는 2% 부족하다면, 경치를 위해 맥주 맛을 희생할 수 없다면, 수제 맥주(크래프트 비어)를 포장해다 마실 수 있다. 서울 서래마을 ‘캔메이커’는 수제 맥주 40여 종류를 캔에 담아 준다. 강기문 대표는 17일 “날씨가 따뜻해진 뒤로는 나들이 하면서 마시려고 사가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했다.

'캔메이커'의 테이크아웃 수제 맥주, '케그 스테이션'의 테이크아웃 수제 맥주, '커피빈'의 소풍 드립 커피, '원글라스'의 팩 와인(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

서울 연희동 ‘케그 스테이션’은 수제 맥주를 즉석에서 플라스틱 병에 포장해 준다. 기계 장치로 병 속 산소를 제거하고 맥주를 넣기 때문에 반나절 정도는 맛이 유지된다고 한다. 케그 스테이션 관계자는 “수제 맥주는 섭씨 8~10도에서 풍미가 가장 좋으므로 조금 식어도 괜찮다”고 했다. 수제 맥주 포장이 가능해진 건 지난해 9월 규제가 풀린 덕분이다. 올해가 수제 테이크 아웃 맥주를 야외에서 마시는 첫 번째 봄인 셈. 올해 말부터는 포장한 수제 맥주가 편의점에서도 유통된다니, 내년엔 피크닉에 들고 가는 게 더 쉬워진다.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케그 스테이션 맥주를 사다 마셔 봤다. 가게까지 가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할만한 맛이었다.

와인파 호모 피크니쿠스라면 종류별 와인을 한 잔 분량씩 포장한 팩 와인을 골라 보자.크리스탈처럼 보이는 플라스틱 와인 잔으로 분위기도 낼 수 있다. 커피 마니아에겐 피크닉용 드립 커피가 있다. 커피빈 관계자는 “뜨거운 물을 가까운 편의점에서 구하거나 보온병에 담아다가 내려 먹으면 된다”고 했다.

'테라네이션'의 피크닉 파라솔과 그늘막, '카즈미'의 피크닉-캠핑 용 우드 테이블과 의자, 아이스 박스.

선글라스와 선크림은 기본. 태양을 더 확실하게 피하고 싶다면 원터치 텐트나 그늘막, 파라솔을 챙기자. 단, 그늘막과 텐트를 못 치게 하는 공원도 적지 않으니 알아 보자. (기사 아래 표를 참고하면 된다.) 간이 의자와 테이블, 블루투스 스피커도 호모 피크니쿠스의 필수템이다. 피크닉 장비로 허세 부리냐고? 잔뜩 싸 들고 다니는 게 귀찮지 않냐고? 1분 1초를 소중하게 보내려는 이들의 정성이자 노력이다.

호텔식 피크닉, 피크닉 페스티벌…피크닉의 진화

‘호텔식’은 ‘일상에서 즐기는 소소한 럭셔리’의 동의어. 피크닉도 호텔식으로 즐길 수 있다. 시간과 돈이 충분하다면, 피크닉 용품 사러 다니는 게 귀찮다면, ‘피크닉 호텔 패키지’가 있다. 우선 호텔에서 하루 묵으며 푹 쉬자. 다음 날 호텔에서 챙겨 주는 피크닉 용품 세트를 받아 들고 자리 펼 만한 곳을 찾아 나서기만 하면 된다. 콘래드 서울의 ‘블루밍 데이즈 패키지’, 롯데호텔 월드의 ‘기다려 봄 패키지’, 그랜드힐튼 서울의 ‘스프링 인 네이처 패키지’, 롯데호텔 제주의 ‘스프링 블라썸 패키지’,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에코 피크닉 패키지’, 여의도 메리어트의 ‘피크닉 위드 대디 패키지’ 등이 있다. 피크닉 세트엔 호텔 셰프가 만든 도시락과 돗자리, 음료 등이 들어 있다. 가격은 20만원대부터이니 만만치 않지만, 봄을 색다르게 누리는 방법이다.

콘래드 서울, 그랜드 앰버서더, 켄싱턴 플로라의 피크닉 세트와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피크닉 도시락(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몇 만원을 투자하면 김밥집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호텔 도시락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피크닉 명소와 가까운 콘래드 서울(여의도)과 롯데호텔 월드(석촌호수) 등은 2만~3만원대 피크닉 세트만 따로 판다.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 밀레니엄 서울 힐튼은 피크닉 도시락을 내놓았다. 갈비, 초밥, 샌드위치 등 메뉴가 다양하다.

수백~수천명과 나란히 돗자리를 펴고 북적북적하게 즐기는 ‘피크닉 페스티벌’ 일정도 챙겨 보자. 종일 풀밭에 누워 국내외 유명 뮤지션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다가 출출하면 주변 매점에서 떡볶이나 닭꼬치, 맥주를 사다 먹고 그 자리에 다시 누우면 된다. 그야말로 ‘피크닉 끝판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달 23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선 여성 음악 페스티벌인 ‘뮤즈 인 시티’가 열린다. 노라 존스, 코린 베일리 래, 김윤아 등이 나온다. 피크닉 페스티벌 마니아라면 5월엔 돗자리가 바싹 마를 날이 없을 듯하다. 5월 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는 열리는 도심형 피크닉 콘서트인 ‘삼성카드 홀가분 페스티발’에는 김연우 에일리 god 등이 출연한다. 20,21일엔 서울 난지한강공원에서 ‘그린플러그드’가 열린다.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악동 뮤지션 등이 연주한다. 하이라이트는 같은 달 27,28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 자미로 콰이, 혼네, 스탠리 클락, 존박, 정승환 등이 나온다. 준비물은 돗자리, 그리고 활짝 열린 귀와 마음이면 충분하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김도엽(경희대 정치외교3)ㆍ이진우(서울대 경제3)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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