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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AI로부터 일자리를 지키는 법

입력
2017.01.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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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태 정책사회부장

당신은 경영자다. 근로자 A와 B가 있다. 능력은 A가 나은데, B가 더 많은 보수를 요구한다. 다른 조건이 모두 동일하다면 누구를 채용하겠는가. 답이 너무 뻔하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A는 인공지능(AI)이고 B는 사람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은 바뀌겠는가, 아니면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하겠는가.

지난 연말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가 경비원 감축 계획을 단 하루 만에 철회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떠오른 질문이다. 사연은 이랬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초소를 통폐합하고 경비원을 감축하겠다는 안내문을 단지 내 곳곳에 붙였다. 주민들의 관리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반기를 든 건 수혜자인 주민들이었다. 어떤 주민은 하루에 담배 한 갑 덜 피면 되지 않겠느냐고, 또 다른 주민은 경비원들을 어떻게 돈으로만 따지느냐고 했다고 한다. 입주자대표회장은 안내문을 붙인 바로 다음날 “입주민의 깊은 마음을 알지 못한 것을 사과한다”며 계획을 접었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기업에서도 경제적인 논리만 따지지 않는 이런 ‘따뜻한 채용’을 하는 게 가능할까.

찰리 채플린이 80여 년 전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산업화에 따른 인간의 소외와 상실감을 그렸듯,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다시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지난해 실업자가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아우성이지만, 진짜 고용한파는 이제부터다. 고용정보원의 최근 분석은 섬뜩하다. 지난해 국내 전체 근로자 12.5%, 그러니까 8명 중 1명은 이미 인공지능(AI)이나 로봇으로 대체 가능한 업무에 종사 중이란다. 아마 그 아파트 경비원들 역시 이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이들이야 주민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일자리를 지켰지만, 이미 자동현관문과 주차관리시스템에 자리를 내준 전국의 경비원들은 수두룩하다.

앞으로는 더 문제다. 불과 8년 뒤인 2025년이 되면 국내 취업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AI가 창출하는 새로운 일자리도 있긴 하겠지만, 없어지는 일자리가 그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근로자 A와 B 중 누구를 선택할 거냐는 질문이 불과 몇 년 뒤 수많은 경영진들에게 실제로 던져질 거란 얘기다.

혹자는 기본소득이 AI에 따른 실업대책의 하나가 될 거라고 말한다. 온 국민에게 혹은 실업자들에게 일정 금액을 국가가 조건 없이 지급하자는 것인데, 핀란드에서는 그 실험이 이미 시작됐다. 국내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서서히 불붙고 있지만, 나는 그 성공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다. 기본소득이란 게 단지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종잣돈이 돼서 취업이나 창업 등으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일자리 수요 자체가 급감하는 현실에선 부질없는 얘기다. 단지 국가 재정만 축낼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처럼 전 세계 기업들에게 “한국에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만들라”고 협박이라도 할 수 있으면 그게 해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그런 내수시장도 또 외교적 힘도 없다. 국내에 있는 일자리를 그들에게 빼앗기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게 현실이라면, 앞으로 경제적 잣대만으로는 지금 있는 일자리를 유지시킬 수 없음이 분명하다. 모든 기업인들에게 아파트 주민들처럼 근로자들에게 따뜻한 인정을 베풀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복지의 잣대 말고는 인간의 일자리를 지킬 방도가 뾰족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일자리에 나랏돈을 마구 쏟아 부을 수는 없을 터. 한정된 재원 속에서 복지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준비해 나가지 않는다면, 불과 몇 년 뒤 옆자리 동료와 당신, 둘 중 하나는 일자리를 내놓아야 할지 모른다. 대선 후보들이 아니면 말고 식의 장밋빛 일자리 수치 목표가 아니라, 이 물음에 대한 답과 비전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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