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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의‘빠던’포기선언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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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의‘빠던’포기선언은 이르다

입력
2017.02.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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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N이 직접 그린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빠던' 이미지. ESPN
ESPN이 직접 그린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빠던' 이미지. ESPN

황재균(30ㆍ샌프란시스코)은 올 시즌 미국프로야구에 진출했다. 초청선수 자격으로 샌프란시스코 스프링캠프에 참가중인 황재균은 국내에서는 롯데의 4번 타자로 주목을 받았지만 미국무대에서는 신인이나 다름없다.

그런 황재균이 미국 언론으로부터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바로 배트 플립(bat flip)이다. 타자가 타격 이후(주로 홈런일 때) 방망이를 던지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한국어로는 ‘배트 던지기’,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빠따 던지기’의 줄임말인 ‘빠던’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다.

스플릿계약(메이저리그때와 마이너리그 소속일 때 조건이 다른 것)을 맺은 황재균은 개막 로스터 진입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한국프로야구(KBO)에서 뛰던 시절에 선보인 배트 플립 덕분에 미국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KBO에서 배트를 던지는 장면이 흔하지만, 경기 매너에 관해 보수적인 메이저리그에서는 배트 플립이 투수를 자극하고 기만한다는 이유로 일종의 불문율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자가 홈런을 친 뒤 공을 응시하며 배트를 널리 던져버린다면, 다음 타석에서 상대투수로부터 빈볼을 얻어맞기 십상일 것이다. 그래서 황재균도 미국 진출을 준비하면서 배트 플립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17일(한국시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까지는 마음껏 배트 플립을 표현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메이저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는 팀 동료들이 미국에서 배트 플립을 하면 투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말해줬다. 그 이후 배트 플립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재균의 이 같은 판단은 성급했던 것으로 판명 날지도 모른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5년 토론토와 텍사스가 맞붙은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호세 바티스타(토론토)가 7회 결승홈런을 쳐낸 뒤 배트 플립 세리머니로 텍사스를 자극해 양팀 사이에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젊은 층에게 야구가 지루한 스포츠로 인식되면서 점차 인기가 떨어지자, 배트 플립과 같은 볼거리를 더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미국에서도 적극 개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스포츠 매체 ESPN은 지난해 10월 직접 한국을 방문한 뒤, 한국프로야구에선 무척 흔한 ‘빠던’을 소재로 열정이 넘치는 한국의 야구문화를 소개하는 장문의 기사를 썼다. 한국처럼 예의가 깊게 뿌리 내린 나라에서 왜 화려한 배트 플립이 흥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그 기사에는 ‘빠던’의 시초로 알려진 양준혁과 화끈한 ‘빠던’으로 유명한 홍성흔, 이범호, 최준석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

타격 후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특유의 ‘만세 타법’으로 유명한 양준혁은 자신이 한국에서 최초로 배트 플립을 선보였고, 1990년대 후반부터 다른 선수들도 곧 자신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고 ESPN에 밝혔다. 양준혁은 “많은 선수들과 해설자들이 내 타격폼을 비판했지만, 나는 내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양준혁 이후 배트 던지기는 한국프로야구에 일종의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선수를 포함한 한국야구 관계자들이 ESPN에 밝힌 배트플립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습관 때문이지 딱히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과 일종의 팬서비스로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KIA의 조계현 코치는 ‘왜 한국 선수들은 자신의 타격을 과시하는 듯이 배트를 던지느냐’는 질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생긴 버릇”때문이라며 일부러 하는 행동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선수들도 “공을 맞추는 데 집중하지, ‘빠던’을 생각할 여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선수가 이범호와 최준석이었다. 이범호는 “아시아 선수들은 풀파워로 스윙을 해야 해서 자연스럽게 방망이가 나간다”고 설명하면서 배트 플립을 하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준석도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 전했다.

반대로 배트 플립이 의도적인 행위라는 의견도 있었다. 호쾌한 팬서비스로 잘 알려진 홍성흔은 “팬들이 배트 플립에 환호한다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며 “선수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배트 플립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어떻게 한국에서 배트 플립이 자리잡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배트 플립의 시초인 양준혁과 함께, “나는 10개 구단 모두에 친구가 있다”며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은 서로 다 선후배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배트 플립을 해도 응징을 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몇몇 선수들은 용병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배트 플립이 문제가 되는 행동인지도 몰랐다고 언급했다.

정우진 인턴기자(연세대 사회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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