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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누가 근로감독관을 두려워하나

입력
2017.11.12 15: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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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폴라니가 설명했듯이 시장경제질서는 산업의 모든 요소를 위한 시장이 존재하고, 여기에는 재화 시장뿐만 아니라 노동ㆍ토지ㆍ화폐가 판매되는 시장도 포함된다고 전제한다. 나아가 모든 소득은 시장에서의 판매 이외의 방법으로 형성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제한이 따라붙는다. 이를 통해 시장경제질서는 모든 신분적 구속을 해체하고 시민들에게 자유를 부여했지만, 그와 함께 노동은 상품화되었다.

‘노동의 상품화’는 사람이 상품으로 취급되고 자신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힘에 종속된다는 걸 뜻한다. 시장에서 노동자들이 상품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그들이 서로 경쟁하고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그 경쟁이 치열할수록 노동의 가격은 헐값으로 떨어지고 원자화된다(G. 에스핑앤더슨, 박시종 역, ‘복지 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7). 그러나 상품으로서 노동에 대한 이런 전제와 달리, 노동을 담고 있는 인간은 상품으로만 취급될 수는 없는 존재다. 낮은 가격에 팔리는 세탁기와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되는 식빵은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인간은 슬프고 스스로의 가치를 되묻고 다른 사람과의 연대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민주주의 체제의 유일한 주체다.

노동법은 시장경제질서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런 구체적 인간을 직시하고 그들의 존엄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제도이다. 애당초 시장경제질서를 운용하고자 만든 시민법 질서만으로는 노동시장을 규율할 수 없고, 거기에서 거래되는 인간을 보호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헌법에 근로권 규정을 두고,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노동조합법 등에서 다양한 내용으로 노동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 깨달음은 노동자의 권리 보호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반 상거래 및 재산 분쟁을 규율하는 민ㆍ형사 법원 외에도,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좀 더 직접적으로 국가의 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을 추가했다. 그 대표적 제도가 ‘근로감독관’이다.

근로감독관은 상품으로서 노동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반영한 행정적 장치이다. 모두 알다시피 시장에서 종속적 지위에 놓인 대다수 노동자에게 재판은 너무 먼 얘기다. 이런 노동자들에게는 사법행정력을 갖춘 근로감독관이 접근 가능한, 거의 유일한 권리 보호 기구이다. 특히 비정규 노동 영역에서 근로감독관의 역할은 중요하다. 최근 불거진 이랜드, 파리바게트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근로감독관은 비정규직들의 권리를 발견하고 보호하는 데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국가 제도다.

근로감독관은 시장에서 선량한 기업을 보호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근로감독 행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을 때, 노동자들에게 적정임금을 주고 휴일을 보장하며 노동법을 지키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되곤 한다. 시장에서 법을 지키는 기업이 바보로 취급되는 걸 막기 위해서도 근로감독관은 필요하다. 노동자들에게 기업의 재산권을 보호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에게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가 그걸 준수하는 기업은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제재해야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어떤 기업이 근로감독관을 두려워할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내세운 근로감독관 증원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법 위반 기업의 온당치 않은 이익을 대변하는 결론으로 매듭지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논쟁은 근로감독관 제도의 효율적 작동과 혁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선량한 기업이 시장에서 법 위반 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고, 우리나라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 기업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정상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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