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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트럼프 쇼크와 정치력 부재 시대

입력
2016.11.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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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어쩌다 나온 괴물 아냐

유권자들 기성정치 더는 안 믿어

최순실 사태 정치권도 귀 담아야

도널드 트럼프 쇼크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럭비공처럼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발언이 어떻게 현실화할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장사꾼 기질’로 그를 설명하지만, 정작 그가 머릿속에 어떤 셈법을 그리고 있는지는 종잡기 어렵다. 미국 지도자라면 필수 코스로 거쳐야 했던 중앙정치 경력이나 군 이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을까. 트럼프 광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 지금 생각하면 전조는 여러 번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경선에서는 허먼 케인 신드롬이 불었다. 경력이라 해 봐야 피자 체인점 사장과 요식업협회 회장이 전부였던 조지아 출신의 흑인인 그는 “들러리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한동안 여론조사 1위를 질주했다. 연일 섹스 스캔들이 터져 나와도 지지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날이면 후원금이 더 쇄도했다. ‘미국을 다시 새롭게 할 때’라는 선거 모토에서 유권자들은 4년 전 버락 오바마를 떠올렸다. 혼외정사 등 성 추문으로 중도 사퇴했지만 길지 않은 경선과정은 공화당 주류 정치계에 인상적 자취를 남겼다. 당시 한 신문은 그의 매력을 이렇게 평가했다. “케인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수히 많지만, 그 모든 이유를 뒤집을 수 있는 한가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텍사스 출신의 억만장자 사업가 로스 페로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돌풍을 일으켰던 1992년 대선도 기성 정치판을 뒤흔든 경우다. 대선을 불과 10개월 앞두고 출마를 선언한 그는 한때 조지 H 부시(공화당)와 빌 클린턴(민주당) 후보를 압도했다. 그가 얻은 18.9%의 득표율은 제3후보가 얻은 역대 최대였다. 그가 후보 사퇴와 번복을 반복하는 돌출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대선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클린턴이 승리한 것은 공화당 표를 잠식한 페로로 인한 반사이익이 적지 않았다. 당시 페로는 기성정당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을 철저히 대변했다. 부시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을 “컨트리클럽 멤버”라며 서민의 적으로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폐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서도 “거대한 굉음을 내며 미국의 일자리가 멕시코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학계에서는 92년 대선을 ‘양당체제 종식의 원년’이라고 평가했다. 양대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도 이때가 시작이었다.

따지고 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인사이더’라고 하기는 어렵다. 시카고에서 풀뿌리 시민사회운동을 했던 그의 중앙정치 경력이라고는 3년여 남짓한 연방상원의원이 전부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워싱턴을 개혁하겠다”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외침이 먹혔던 덕분이다.

240년 미국 역사에서 60여개의 제3당이 명멸했지만 집권한 적은 한번도 없다. 양당정치가 갖는 안정성, 체제 내 점진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늬만 공화당 후보였을 뿐 당과 치열한 노선 갈등을 겪으며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정권의 등장으로 이런 해석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게 됐다. 더 적극적으로 보면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는지 모른다. 트럼프의 선거전략가인 로저 스톤은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민심과 정치세력 간의 단절을 상징하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은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선실세 파문으로 국정이 마비상태에 이른 지금이 그렇다. 식물상태나 다름 없는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 새누리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태를 주도적으로 수습해가야 할 야권의 지리멸렬함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최순실 사태의 교훈은 주술적 비선조직에 빠져 국정을 사유화한 박 대통령의 과오에 멈추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 물음은 국민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는 이런 여야에 우리 정치를 맡겨도 되는가 하는 것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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