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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호랑이는 천연기념물이 아니다

입력
2017.07.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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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학교에서 한반도는 토끼처럼 생겼다고 배웠다.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토끼가 두 다리로 서 있는 모습과 비슷했고 토끼는 왠지 평화를 사랑하는 동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한반도를 토끼처럼 보는 것은 나약하고 외세 의존적인 자세로 여기는 풍조가 생겼다. 맹호기상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알고 보니 맹호기상도의 전통 역시 오래되었다. 1908년 <소년> 창간호에 최남선이 호랑이 모습의 한반도 형상도를 그려 넣은 것이다. 물론 토끼 형상에 대한 반발이었다. 뭐, 나쁘지 않았다. 내 나라 땅 모양이 토끼처럼 도망이나 다녀야 하는 동물보다는 숲의 왕인 호랑이처럼 생겼다니 뿌듯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를 우리나라의 상징 동물처럼 여긴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단의 가슴에 호랑이가 붙어 있다. 호랑이는 애국심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동물원 밖에서는 호랑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지 않다. “호랑이는 천연기념물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면 대뜸 반발한다. “아니 호랑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동물이 천연기념물이란 말이냐. 호랑이는 분명히 천연기념물이다”라고 큰소리친다. 과연 그럴까?

천연기념물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의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다. 1800년의 어느 날 베네수엘라 북부에 있는 어떤 호수 근처를 지나던 훔볼트는 1.6㎞ 떨어진 곳에 있는 거대한 나무를 발견하였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니 유럽의 자귀나무와 비슷했다. 그런데 나무의 키는 18m에 이르렀고 가슴 높이의 지름은 9m였으며 펼쳐진 나뭇가지의 지름은 59m로 둘레 길이가 175m에 달했다. 물론 훔볼트가 발견하기 전에도 그 나무는 지역에서 유명한 노거수(老巨樹)였다.

노거수의 장엄한 모습 앞에서 훔볼트는 자연생물에 대한 경외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훔볼트는 후에 <신대륙의 열대지방 기행>을 집필하면서 ‘천연기념물’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자연의 모습이 농사와 목축이 주산업인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형상을 띠게 되었다. 그러자 ‘자연보호’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했다. 마침내 1906년 독일에는 ‘프로이센 천연기념물 보호관리 국립연구소’가 세워졌는데 연구소 활동원칙에 천연기념물이 정의되었다. 여기에 따르면 천연기념물이란 “특색 있는 향토의 자연물로서 지역의 풍경ㆍ지질ㆍ동물 등 무엇이든 그 본래의 장소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천연기념물을 보호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에는 동물과 식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서식지와 광물, 화석, 동굴, 지형과 지질도 천연기념물이 된다. 단 반드시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이유는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미 사라지고 없으면 보호를 할 수가 없다. 호랑이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멸종했다. 따라서 천연기념물이 될 수가 없다.

멸종위기종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생물 중 자연적인 생태계 변화나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수가 매우 적거나 줄어들고 있는 생물들을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관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크낙새는 멸종위기종일까? 지난 7월 12일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지난 7월 13일부터 크낙새는 더 이상 멸종위기종이 아니다. 크낙새는 길이가 45센티미터에 이르는 대형 딱따구리과의 새로서 백두산 이남의 한반도에만 서식한다. 하지만 크낙새가 2004년 강원도에서 관찰된 이후 단 한 번도 관찰되지 않자 환경부가 크낙새를 멸종위기종 동물 목록에서 제외한 것이다. 크낙새는 멸종 위기에 놓인 게 아니라 이미 멸종한 생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멸종위기종은 226종이다.

우리나라에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있을까?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이 국립자연사박물관 아니냐고?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최고의 박물관이기는 하지만 국립이 아니라 서대문구가 운영하는 구립박물관이다. 우리나라에는 놀랍게도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다. 웬만한 나라치고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외국인들이 많이 놀란다. 자연사박물관은 멸종을 연구하는 곳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인류가 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이 늦어지는 까닭은 그곳을 단순한 전시관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자연사를 연구하는 곳이어야 하며 전시는 오히려 부차적인 기능이라고 봐야 한다.

최남선은 한반도의 형상을 “용맹스러운 호랑이가 발을 들고 허우적거리면서 동아시아 대륙을 향하여 나르는 듯 뛰는 듯 생기 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좀 솔직해지자. 맹호기상도의 호랑이는 매우 불편한 자세를 하고 있다. 포효하기는커녕 신음할 것 같은 자세다. 있지도 않은 호랑이에게 매달릴 게 아니라 있는 생물자원을 보호해야 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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