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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느끼다... 여기가 '맛의 천국'

입력
2017.05.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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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사동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 3층에서 ‘셀프 쿠킹’을 체험했다. 장진모 셰프가 만든 타이 커리와 본보 최문선 기자, 이해림 푸드 라이터가 함께 만든 관자 구이 요리. 라면보다 쉽게 만들었지만 그럴듯한 맛이 난다.
서울 신사동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 3층에서 ‘셀프 쿠킹’을 체험했다. 장진모 셰프가 만든 타이 커리와 본보 최문선 기자, 이해림 푸드 라이터가 함께 만든 관자 구이 요리. 라면보다 쉽게 만들었지만 그럴듯한 맛이 난다.

한국 사람은 만세도 삼창이고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이다. 뭐든 세 번이 가장 좋다. 그러나 현대카드는 ‘삼세번’이라는 말을 무력화시켰다. 2013년 2월 ‘디자인 라이브러리’, 2014년 5월 ‘트래블 라이브러리’, 이듬해 5월에는 ‘뮤직 라이브러리’를 연 현대카드가 올 4월 28일 ‘쿠킹 라이브러리’를 열었다. 삼세번의 마법이 효력을 다한 후, 현대카드의 네 번째 라이브러리는 과연 성공할까? 심지어 대중문화의 ‘먹방’ ‘쿡방’ 열풍도 이미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쿠킹 라이브러리 개관 후 한 달여가 흐르는 동안 요리사와 요리에 관심 많은 일반인의 호평이 동시에 들려왔다. 모든 콘텐츠에는 소구 대상이 있다. 하나의 콘텐츠가 전문가와 일반인에게 동시에 좋은 평판을 얻는다는 것은 꽤나 기이한 일이다. 연유를 밝히기 위해 24일 푸드 라이터 이해림, 요리를 좋아하지만 겁내는 본보 문화부 최문선 기자, 그리고 전문가로 장진모 셰프가 쿠킹 라이브러리를 찾았다.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뒤덮은 외관은 수수하고 무던하다. 사진 현대카드 제공.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뒤덮은 외관은 수수하고 무던하다. 사진 현대카드 제공.

미식의 중심에 조용히 파고들다

미식의 중심 서울 강남, 거기에서도 청담동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도산공원 뒤편.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는 생각보다 아담하고 외관마저 저렴한 합성 소재인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해 수더분한 첫인상을 준다. 어금니를 꽉 깨문 것처럼 검게 꾹 닫혀 있는 입구의 작은 자동문은 현대카드를 긁어 인식시켜야 비로소 열린다. 현대카드 회원 본인과 동반 2인까지만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1층 델리에서 판매하는 음식은 다분히 ‘도산공원 취향’을 반영했다. 샴페인을 곁들여 브런치로 즐기기 좋은 구색이다.
1층 델리에서 판매하는 음식은 다분히 ‘도산공원 취향’을 반영했다. 샴페인을 곁들여 브런치로 즐기기 좋은 구색이다.
1층 델리와 베이커리 주방에서는 요리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오롯이 볼 수 있다.
1층 델리와 베이커리 주방에서는 요리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오롯이 볼 수 있다.
1층 전경. 넓다고 할 수 없지만 체감되는 공간감은 훨씬 널찍하다. 현대카드 제공.
1층 전경. 넓다고 할 수 없지만 체감되는 공간감은 훨씬 널찍하다. 현대카드 제공.

원오원아키텍츠가 설계하고 인테리어는 영국의 블랙쉽이 담당한 공간은 오밀조밀하게 짜였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확장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꽉 차있으면서도 텅 비어있다. 빛과 바람이 통하는 넓은 공동이 공간의 숨통을 튼다. 1층 오픈 키친에서는 구수한 빵 향기가 퍼져 나온다. 식욕을 자극하는 이 화학 물질은 4층까지 따라다니며 시원하게 뚫린 공간의 여백을 채운다. 델리로 꾸며진 1층은 야외로 확장돼 전체가 테라스 같다. 간단한 음식을 주문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데, 샌드위치와 파스타, 샐러드 등 브런치를 즐기기 좋은 메뉴 구성은 ‘도산공원 취향’이다. 벽면에는 곳곳마다 작은 진열장, 냉장고를 둬서 그릇과 주방 소품, 치즈와 햄을 판매한다.

1만권의 맛있는 지식

1만여 권의 장서는 절판돼 20배 가격으로 치솟은 희귀 원서부터 백종원의 요리책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알차게 갖추었다. 현대카드 제공.
1만여 권의 장서는 절판돼 20배 가격으로 치솟은 희귀 원서부터 백종원의 요리책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알차게 갖추었다. 현대카드 제공.

1층의 식욕은 2층의 지식욕으로 이어진다. 2층부터는 소지품을 맡기고 다시 현대카드를 인식시켜야 입장할 수 있다. 1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2층으로 계단을 오르자 서가 사이사이를 다니는 장 셰프의 발걸음이 조급해진다. 그는 식재료에 대한 관심 만큼이나 음식, 요리 관련 책에 관심이 많기로 유명한 요리사. 쉽게 말해 공부 벌레요 ‘오타쿠’다. 오타쿠의 감상은 한 마디로 “어떻게!”였다. 장 셰프는 “이 책은 살까 말까 했던 건데 어떻게 여기에!” “’아트 컬리내어(Art Culinaire)’ 41권까지는 절판돼 구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전권이!” 같은 감탄을 쉼 없이 뱉어냈다.

그가 살까 말까 했다는 책은 이를 테면 절판돼 중고 거래 가격이 1,200달러(약 134만원)까지 치솟았지만 결정적으로 프랑스어판이라 고민만 하고 있는 ‘랑브루아지(L’Ambroisie)’. 1986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업해 1988년 ‘미슐랭 가이드’ 3스타를 얻어낸 이래 현재까지 40년 가까이 3스타를 지키고 있는 클래식 프렌치 레스토랑 ‘랑브루아지’의 레시피북이다. 112권 전권을 소장한 것만으로도 경탄을 불러낸 미국 ‘아트 컬리내어’. 1986년 창간한 이래 광고는 5% 이내로만 싣고 여전히 인쇄 매체만 발행하기를 고집하는, 전문 요리사를 위한 요리 계간지다.

스페인에서 분자 요리의 시류를 만든 레스토랑 ‘엘불리’의 레시피북, 이달 18일 서울 잠실 시그니엘 서울 호텔에 ‘스테이’ 레스토랑을 낸 야닉 알레노 셰프의 절판된 레시피북 ‘4 시즌스 앳 테이블 넘버 5(4 Seasons at Table No 5)’, 현대 요리를 집대성한 ‘모더니스트 퀴진(Modernist Cuisine)’ 같은 책들도 아무렇지 않게 꽂혀 있다.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5’ ‘지유가오카 베이크샵의 시크릿 레시피’, ‘나의 첫 홈 베이킹’ 같은 국내 도서와 번역서도 갖추었다.

'인그리디언츠 하우스’에서 장진모 셰프가 오일 향을 맡아 보고 있다. 손에 든 책 역시 구하기 힘든 희귀본이다.
'인그리디언츠 하우스’에서 장진모 셰프가 오일 향을 맡아 보고 있다. 손에 든 책 역시 구하기 힘든 희귀본이다.
2층 서가 가운데에 들어선 ‘인그리디언츠 하우스’. 150여 종의 향신료가 망라돼있다. 현대카드 제공.
2층 서가 가운데에 들어선 ‘인그리디언츠 하우스’. 150여 종의 향신료가 망라돼있다. 현대카드 제공.

쿠킹 라이브러리 개관을 담당한 현대카드 브랜드2실 류수진 실장은 “지역과 식재료, 조리방법, 어워드 컬렉션 등 크게 11개 주제로 1만여 권의 장서를 분류했다”며 “어워드 컬렉션은 전 세계 양대 북 어워드인 ‘제임스 비어드 재단 북 어워드’ ‘IACP 쿡북 어워드’ 수상 도서를 모았다”고 말했다. 류 실장은 “뮤직 라이브러리의 ‘롤링스톤즈’ 전권이 간판 도서인 것처럼 ‘아트 컬리내어’ 전권운 쿠킹 라이브러리를 위해 전세계에서 어렵게 모은 간판 도서”라고 덧붙였다. 류 실장과 팀원 7명은 전 세계를 다니며 전문가 큐레이터 3명의 조언을 받아 장서 목록을 꾸렸다. 2층엔 또 하나 독특한 공간이 있다. ‘인그리디언츠 하우스(Ingredients House)’라고 부르는 향신료의 유리 집. 향신료와 각종 소금, 오일을 맡아 보고 맛볼 수 있는 맛과 향의 도서관이다.

최고의 주방에서 꿈을 요리하다

9팀이 동시에 요리할 수 있는 3층 주방은 최고급 설비를 갖춘 ‘홈 쿡’의 꿈의 주방이다. 현대카드 제공
9팀이 동시에 요리할 수 있는 3층 주방은 최고급 설비를 갖춘 ‘홈 쿡’의 꿈의 주방이다. 현대카드 제공

3층과 4층은 2층에서 얻은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는 공간이다. 3층의 주방엔 총 9 세트의 주방설비가 설치됐다. 화구부터 작은 소품까지, 모두 가정용 제품의 최고급 라인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꼭 써보고 싶은 꿈의 주방. 요리를 좋아하는 본보 최문선 기자가 반긴 공간이자, 주방 욕심에 이사를 고심 중이던 나의 이사 욕구를 잠재운 완벽한 주방이었다. 장 셰프 역시 “이런 주방은 가정용이지만 어지간한 식당보다도 한 수 위”라고 감탄했다. 이 주방에서는 라이브러리가 주는 레시피와 식재료로 셀프 쿠킹을 해볼 수 있다. 앞으로는 쿠킹 클래스가 열릴 예정이다.

세 명이 두 팀으로 나누어 셀프 쿠킹에 도전해봤다. 밑 손질과 계량을 마친 식재료는 레시피 카드에 적힌 대로 썰고 볶기만 해도 근사한 요리가 됐다. 결과물의 질은 높지만 과정은 라면의 난이도로 뚝 떨어트린 똑똑한 레시피다. 서가의 장서 속 레시피를 쉽게 변형했다. 최 기자는 “귀찮은 과정은 전부 생략되고 오로지 요리의 판타지만 쏙 취할 수 있게 돼있다”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먹방, 식당을 애써 찾아가 먹고 나면 배 부르고 허탈해지는 외식보다 진화한 음식 체험”이라고 말했다.

쿠킹 라이브러리의 철학을 반영한 주제로 올 하반기에 프라이빗 다이닝 서비스를 시작하는 그린하우스(온실). 현대카드 제공.
쿠킹 라이브러리의 철학을 반영한 주제로 올 하반기에 프라이빗 다이닝 서비스를 시작하는 그린하우스(온실). 현대카드 제공.

3층이 요리를 경험하는 곳이라면 4층은 요리를 즐기는 곳이다. 옥상의 유리 집은 온실처럼 꾸며 푸릇푸릇한 식물의 싱그러움 속에 사적인 식사를 즐기도록 꾸몄다. 쿠킹 라이브러리의 철학을 담은 특별한 ‘프라이빗 다이닝’은 올 하반기에 시작할 예정이다. 점심과 저녁 각 한 팀만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며, 100% 예약제로 운영된다.

1층부터 4층까지, 음식과 요리의 천국이 펼쳐지지만 천국의 심장부는 지하에 있다. 통유리로 시원하게 개방된 메인 주방이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의 진짜 정수다. 장 셰프가 보자마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주방보다도 좋다!”고 외쳤을 정도로 최고, 최적의 주방이다. 주방 화구 등 설비는 국내에서 손 꼽을 정도로 타협 없이 최고급을 선택했다. 요리의 각 파트를 담당하는 ‘스테이션’이 짧은 동선으로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4층까지 요리를 올려 보내는 덤웨이터(소하물 전용 승강기) 안에 음식 온도를 유지시켜주는 적외선 히터를 달았다. 이 정도로 섬세할 수 있었던 건 실제 주방을 사용할 요리사들이 공간 구성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마무리는 위트 있다. 지하 화장실에 들어가면 벽 앞 좁은 공간을 통창 너머로 바라볼 수 있다. 거기엔 칸마다 ‘LOOK AT ME(나를 봐줘)’라는 글을 새긴 조형물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브제가 다 펜넬이며 여주, 오이 등 채소다. 영국 작가 데이빗 슈리글리의 작품이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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