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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콩글리시도 우리의 소프트파워다

입력
2017.06.2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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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의 에디터를 만나서 콩글리시 단어인 skinship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후 한국에서 널리 쓰이고, 이제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이 단어가 영어 시민권을 갖게 될 날이 멀지 않아서다.

이 단어뿐 아니라, 여러 다른 콩글리시 단어들도 시민권 물망에 오르고 있다. 파이팅(fighting)은 콩글리시 단어의 대표적 사례다. 많은 사람들은 이 단어가 콩글리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이 단어를 쓴다. 특히 이 단어는 한류, 특히 한국 스포츠의 붐을 타고 세계인들에게 소개가 되더니, 이제는 영어 매체에서 공공연히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로 쓰고 있다. 때문에 틀린 단어라고 배운 이 단어 역시 옥스퍼드 사전에 기재될 확률이 높아졌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처음 만들어진 1884년 초대 편집장을 맡았던 제임스 머레이 박사는 전세계 식민지에서 유입된 낯선 단어들 가운데 어디까지 사전에 수록해야할지를 놓고 고심했다고 한다. 이 고민은 이후의 모든 편집장들에게도 이어졌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처럼 수록 여부를 둘러싼 고민과 결정이 까다롭던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여러 영미권 문화에서 온 단어들이 영어 속에 자리를 잡고 성장하는 데 별다른 큰 걸림돌은 없었다.

문제는 이 관대함이 콩글리시를 비롯해 영미권 이외의 영어권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어 단어들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얼마 전 서울주재 영국 문화원이 콩글리시에 대한 비디오를 올린 것을 보았다. 여기서 셀카는 콩글리시고, 셀피가 올바른 영어 단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셀피 역시 영미권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 단어는 호주산이다.

반면 셀프와 카메라를 섞어 만든 셀카는 한국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이 영어를 쓰는 마당에 호주산은 옳고 한국산은 틀리다는 말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휴대 전화를 핸드폰이라고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모바일이라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셀폰이라고 한다. 영미권 사람들이 그렇게 쓰지 않으니 한국에서도 핸드폰을 모바일이나 셀폰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영어가 세계어로 자리잡으려면 우월의식이나 독선적인 태도를 버리고, 타 문화권이 응용한 다양한 영어를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스킨십을 비롯한 콩글리시 단어들에 대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수용적 태도 역시 이런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영국인들은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데 우리보다 느리다. 그들은 있는 단어를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달리 한국인들은 새로운 단어를 참 신나게도 만드는 것 같다. 슈퍼마켓이나 쇼핑몰에 가면 대부분 상표와 이름이 '한국제' 영어로 쓰여있다. 전통적인 영어의 잣대로 보자면 대부분 잘못된 영어다.

예를 들어 화장품 종류와 이름은 온통 영어투성이지만,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 화장품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면서 세계인들은 한국화장품의 종류명을 그대로 배우고 있다. 일례로 BB cream은 독일의 피부과 의사가 처음 소개했지만, 그 화장품과 이름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한국 화장품 회사를 통해서다.

영어가 한국에 정착한 지 120년 가까이 된 오늘날, 이런 단어들이 우리 삶의 구석 구석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런 만큼 한국인들의 삶과 함께 해온 이 단어들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잘못된 단어라는 족쇄를 씌우는 것은 자해행위다. 이 단어들이 우리의 실정과 필요, 그리고 구미에 맞는 문화이고 우리의 소프트 파워를 반영한 성과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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