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원 기자

등록 : 2017.07.16 20:00
수정 : 2017.07.17 09:25

[강소기업이 미래다] “직원들 복지ㆍ자존감 높여주니 회사 덩달아 성장”

등록 : 2017.07.16 20:00
수정 : 2017.07.17 09:25

여행박사 신창연 이사

2000년 단돈 250만원으로 창업

여행박사를 창업한 신창연씨는 여행업계의 이단아, 괴짜로 불린다. 류효진기자

“왜 직원들의 복장을 사장이 정하죠? 왜 사장 아들이 회사를 물려받아야 하나요? 도대체 왜 모든 직원이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야 하나요?” 2000년 자본금 250만원으로 여행박사를 창업해 국내 굴지의 여행사로 키운 신창연(54)씨는 여행업계에선 ‘괴짜’ ‘이단아’로 불린다.

지난 10일 서울 갈월동 여행박사 본사에서 만난 그는 “직원들에게 ‘쫓겨나’ 세상 이곳 저곳 돌아다니고 있다”며 “공식 직함은 여행박사 이사지만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사장이라 부른다. 직원들과 술 먹을 땐 가끔 오빠 소리도 듣는다”며 웃었다.

여행박사는 각 팀장을 직원들의 투표로 뽑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너나 전문경영인이 인사권을 쥐고 흔드는 보통의 회사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팀장뿐 아니라 대표 또한 직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는 자신이 대표 선임의 기준으로 내건 80%의 득표율을 기록하는데 단 한 표 차이로 실패해 2013년 말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외곽에서 회사의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 자리를 떠났지만 창업주 신창연과 여행박사를 떼어낼 수는 없다. 여전히 여행박사는 많은 부분 그에게 기대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신경 쓰는 분야는 직원들의 복지다. “유럽 등을 돌아보니 적은 노동시간에 효율적으로 일을 하더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천재는 적게 일할 때 가장 많이 일을 한다’고 말했단다. 직원들에게 우리도 주 35시간 근무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 물었더니 굉장히 좋아했다. 그럼 함께 추진해보자 했다.” 괜히 일찍 나와 마냥 퇴근시간까지 기다리는 시간, 근무시간에 커피 마시며 노닥거리는 시간 등을 줄이면 하루 7시간 근무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출퇴근 긴 사원들에 사택 제공

비정규직도 정년도 없는 회사

내달부터 격주 4일 근무제 시범운영

북유럽 같은 ‘꿈의 직장’ 성큼

그는 대표에서 물러나 해외 이곳 저곳을 다니다 보니 스스로가 한결 풍성해졌다고 했다. 류효진 기자

그가 땐 군불로 여행박사는 3~4일간의 논의 끝에 8월부터 격주 금요일 휴무를 3개월간 시범 실시하기로 13일 최종 결정했다. 주 5일을 근무한 다음 주는 4일만 근무하게 된 것. 북유럽과 같은 ‘꿈의 직장’ 문화에 성큼 다가간 것이다.

사실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 말고도 여행박사는 우리 기업의 복지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출퇴근 왕복 3시간 이상인 직원들에겐 회사 인근 오피스텔을 사택으로 제공하고, 성형ㆍ미용수술을 하면 본인 부담금의 50%를 내주기도 했다. 성형수술비 지원은 이후 매월 10만원씩의 복지포인트 지급으로 변경됐다. 회사가 흑자를 내면 전 직원이 가족 동반 해외워크숍을 떠났는데 창립 후 16년간 해외워크숍은 11차례 진행됐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의 휴가, 근속 5ㆍ10년 마다 각각 5ㆍ10일의 안식일 유급휴가, 1시간 단위로 쪼개 쓸 수 있는 시차제도 운영된다.

그는 순간순간 ‘왜?’라는 의문이 떠오르면 바로 손봤다고 했다. 이전 직장 다닐 때 불합리하다 느꼈던 것들도 대상이다. 그의 상상은 여행박사를 통해 현실이 됐다. “늦잠 자고 나와 보니 천천히 출근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자율출근제를 실시하고, 땡땡이 치고 영화 보러 갔더니 좋아서 한 달에 하루는 3시간 일찍 퇴근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젊은 직원들이 왜 모두 일찍 나와야 하지’ ‘왜 넥타이를 꼭 매야 하는 걸까’ ‘일방적으로 전달할 거면 회의를 왜 하나’ 등 그의 머릿속 적폐들은 곧 여행박사에서 사라졌다. 회사엔 정년도 없고 비정규직도 없다. 직원을 뽑을 때 학력ㆍ나이 등은 묻지 않는다. 채용에 대표는 관여하지 않고 담당 팀장과 팀원이 면접을 보고 결정한다. “같이 일할 팀원들의 선택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후배 위계질서도 없다. 팀장이나 부서장이 투표에서 떨어져 다음 해엔 팀원으로 일하는 것도 익숙하다. 그는 “저 다음에 대표를 했던 분도 지금 직원으로 일 잘하고 있다”며 “한번 회사에 들어가면 계속 직급이 올라가기만 한다는 게 과연 맞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회사의 수익과 직원의 자존감을 놓고 고르라면 직원들의 자존감을 택하겠다는 그다. 그렇게 10여년 회사가 운영되다 보니 직원들의 높은 만족도가 기대 이상의 이익을 불러왔다. 달달 볶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니 회사가 성장하더라는 것. 여행박사가 증명한 경영 모델이다.

“식스팩 복근은 만드는 게 아니라 숨어있는 것을 꺼내는 것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숨은 능력을 이끌어내면 숨어있던 이익도 따라 올라온다.”

모든 걸 풀어주는 여행박사도 금연 하나만은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다. 흡연자는 입사할 수 없다. 전 직원이 금연을 해야 하는데 소변 검사 등을 실시해 흡연이 발각되면 해당 팀원 모두 해외워크숍에서 제외된다. “사연이 많았다. 처음엔 금연하면 100만원을 주고, 다시 피우면 200만원을 토해내라고 했는데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예전 사옥이 주유소 바로 옆이라 위험하기도 했고, 모 지사장이 담배로 건강을 많이 상하기도 했다. 직원들 의견을 구했더니 더욱 강력한 제재를 원했다. 담배 끊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해 결국 전 직원이 금연에 성공했다. 본인들도 고마워 하더라. 덕분에 나도 끊었다.”

여행박사는 초기 자유여행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시장이 확대되면서 여행박사도 패키지 상품을 키워야 했다. “패키지 상품의 경쟁력은 역시 현장 가이드였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돈 아끼겠다고 가이드를 혼자 온 손님과 한 방에 재우더라. 치사하게 돈 벌지 말자고 했다. 가이드에게 따로 방을 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행박사의 패키지 상품 경쟁력은 무럭무럭 커갔다.”

개별여행 시장에선 최근 많이 생긴 여행 스타트업들을 인수ㆍ합병해 재미를 보고 있다. “홍콩ㆍ마카오의 티켓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을 회사에 소개했더니 2달 후에 여행박사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더라. 회사는 그들이 한달 번 돈으로 인수 비용을 다 뽑았다. 그들에게 잘 지내냐 물어보니 여행박사 문화가 너무 좋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여행박사로 이직한 직원 예닐곱 명과 밥을 먹은 적이 있다고 했다. 직원들은 초반에 실적이 나오지 않아 초조한 상황이었는데, 사장이 “그럼 휴가나 가서 머리를 식히고 오라”고 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미안해서 더 열심히 했다고. 그들 덕분에 여행박사의 시장 파워는 더욱 강해졌다.

요즘 여행사들은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 에어비앤비 등과 경쟁하느라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언뜻 보기엔 그렇지만 여행사들 실적이 악화하거나 직원들 월급이 깎인 곳은 없다.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건물을 올리는 게 여행사들이다. 주 3편 가던 오키나와에 이젠 하루 6,7편이 뜨고 있다. 여행시장의 파이가 커졌다. 시장에 핑계 댈 것 없다. 그 안에서 길은 다 찾아진다.”

여행박사의 매출은 2011년 122억원에서 지난해 293억원으로 2.5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매년 영업이익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벌면 쓰자’는 생각 때문에 그렇단다. “이익이 나지 않거나 적자라도 직원들이 재미있으면 좋지 않나. 회사 존재 가치가 오직 수익 창출이었다면 자율문화와 복지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난해 연봉과 복지를 다 올렸는데도 올 상반기엔 23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났다.”

회사 지하엔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는 피트니스클럽이 입주해 있다. 그곳의 사장도 여행박사처럼 직원들과 방콕을 다녀왔다고 했다. “피트니스클럽 사장이 내게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됐다’고 하더라. 우리가 회사를 하는 이유가 단지 돈을 많이 벌어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건 아니잖은가?”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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