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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대학들이 학생을 이토록 호갱으로 보는 줄 몰랐습니다”

입력
2017.03.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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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돈의 전당’ 보도 그 후 쏟아진 반응들

지각을 한 것도 아닌데 학생들은 뛰어야 합니다. 칠판이 잘 보이지 않거나 교수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블랙홀'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달려야 합니다. 누군가 그 자리에 앉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자리에 앉는 미덕은 과용입니다. 학점 따기 어려운 상황을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지각을 한 것도 아닌데 학생들은 뛰어야 합니다. 칠판이 잘 보이지 않거나 교수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블랙홀'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달려야 합니다. 누군가 그 자리에 앉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자리에 앉는 미덕은 과용입니다. 학점 따기 어려운 상황을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27일 오전 이화여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국일보 25일자 ‘대학, 돈의 전당’ 기획기사에 나온 이대의 적립금 금액(2014년 기준, 7,858억 원)에 대한 해명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2015년 7,067억 원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공시를 할 예정입니다만 지난해 2016년에는 약 6,700억 원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적립금을 많이 쌓아 놓으면 비판을 받다 보니 그 수치를 낮춰 보려 애쓰는 것입니다. 잠시 뒤 성균관대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학교 관계자가 학생들이 쓰는 공간의 천장에서 물이 샌 곳을 수리한 다음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사진이 기사에 실리자, 문제가 있는 곳을 이미 수리했다는 항변이었습니다.

대학 관계자들이 해명과 함께 진땀을 흘렸다면, 학생들은 보도된 기사에 대해 공감 또 공감이었습니다. ‘나만 저런 형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들 원래 이렇게 학교 다니는 건 줄 알았다’ ‘작년에 왜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문제제기를 했는지 이제야 알게 돼 미안했다’ 등 말도 안 되는 현실에 공감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데에 답답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학부모들의 안타까움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지난해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킨 한 학부모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게 하려고 그 많은 등록금을 낸 게 아니다”라며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대학생 자녀 둘을 둔 또 다른 지인은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학교 다니는 줄은 몰랐다”며 “아이들과 소주 한 잔 하면서 얘기를 좀 나눠봐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많은 이들이 정말 이런 화장실이 서울 시내 대학교 안에 있는 것이냐고 여러 차례 물었습니다.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서울 시내 그것도 '인서울 톱 10'에 든다는 한국외대 도서관에는 이런 화장실이 있습니다. 학생 제공
기사가 나가고 많은 이들이 정말 이런 화장실이 서울 시내 대학교 안에 있는 것이냐고 여러 차례 물었습니다.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서울 시내 그것도 '인서울 톱 10'에 든다는 한국외대 도서관에는 이런 화장실이 있습니다. 학생 제공

지금부터 19년 전인 1998년 2월 대학을 졸업한 기자가 지금 대학생들의 얘기를 다루기로 했을 때에는 ‘세대 차이’ 때문에 학생들을 이해 못할까 걱정했습니다.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20세기 대학생(기자)과 21세기 대학생(취재원)의 대학은 언뜻 봐서는 비슷했습니다. 수강 신청은 전쟁이었고, 강의실은 모자랐고, 강의실 책상은 비좁았습니다.

요즘의 대학생들은 수 백 만원 등록금, 입학금을 냈지만 그 만큼의 대접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블랙홀’이라는 나쁜 자리에 앉지 않기 위해 지각을 한 것도 아닌데 달려야 했고, 사물함을 배정 받지 못해 무거운 전공책을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좋은 학점을 쉽게 딸 수 있는 강의를 열심히 찾아 다니는 것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 학창시절에는 학점 잘 받는 강의를 ‘A뿔(+) 폭격기’라 했지만 지금은 ‘쁠(+)몰’ 이라 부르는 것만 달랐습니다. 등록금은 2배 가까이 올랐을 뿐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은 19년 간격의 대학 생활. 아니, 지금 대학생들의 상황은 훨씬 더 열악했습니다. 한 사립대 교수의 말은 기자를 씁쓸하게 만들었습니다. “내주는 과제마다, 보는 시험마다 너무들 잘 해 냅니다. 다 A학점을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요. 상대 평가라 다 A학점을 줄 수는 없고 누군가는 B나 C를 받아야 하는데 교수 입장에서는 참 난감합니다.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어느 학생이 결석이라도 하면 속으로 ‘휴, 다행이다’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듭니다. 변별력이 생기니까요.” ‘장미칼’ ‘양민학살’ 등은 치열한 학점 경쟁을 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슬픈 현실을 상징하는 말들입니다.

교수들의 형편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나거나 통화를 한 교수들은 “(대학이) 이대로는 가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새내기 비정년 트랙 교수는 “주변에서는 교수 됐다고 축하합니다. 저는 시간강사나 다름없는 비정규직 교수인데, 그렇다고 그걸 얘기할 수도 없어요. 특히 연봉이 3,500만 원도 안 되는 현실을 쉽게 감당하기 힘들죠. 학생들을 보면 저는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르치는 우리나 배우는 학생들이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학들은 말끝마다 “돈 없다” “가난하다” 고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듭니다. 수 백 억원, 수 천억원씩 적립금을 쌓아 두고 학생들 등록금은 엉뚱하게 쓰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일부 대학들은 대학생들을 돈 내고 캠퍼스에서 돌아다니는 ‘고객’, 나아가 몇 가지 수업만 개설해주고 등록금을 왕창 뜯어낼 수 있는 ‘호갱’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교육소비자인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주기보다 ‘봉’으로 여기는 것이죠. 수 십 년 전에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화장실이 바로 지금 서울의 대학 캠퍼스에서 발견되고, 습한 반지하 강의실에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더구나 교육부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풀려 하기보다는 재정 지원금을 미끼로 ‘시키는 대로 따라와, 돈 줄게’라며 대학들을 쥐락펴락 하고 있습니다. 한 사립대 보직 교수는 “대학들이 교육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정원 축소 등 철퇴를 내려 문을 닫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막상 문제가 발생되면 적당히 겁만 주고 문 닫을 정도로는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니까요. 대학들도 그걸 알고 있으니 적당히 눈치 보는 척하면서 개선하겠다고 시늉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죠.”

2주 넘는 취재 기간 동안 몇 차례 찾은 대학 캠퍼스는 청춘과 낭만을 찾아 보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쳇바퀴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쳇바퀴 안에서 누가 더 잘 달리나 경쟁을 벌이는 대학생들을 보니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다른 대학들도 문제가 있다는 제보가 속속 들어 오고 있습니다. 더 많이 취재했으면 더 생생한 사례들을 담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 한편 마음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몇몇 대학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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