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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아돌프 아이히만(5.11)

입력
2018.05.1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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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 오늘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됐다. 사진은 재판정의 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 오늘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됐다. 사진은 재판정의 그.

나치 홀로코스트의 실무 리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이 1960년 5월 1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체포됐다. 리카르도 클레멘테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당시의 그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현지 지사 부장급으로 근무 중이었다.

아이히만은 패전 직후 미 육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됐지만, 상대적으로 계급(친위대 중령)이 낮은 데다 가명을 써서 뉘른베르크 재판을 모면했다. 46년 루돌프 헤스 등 주요 전범 재판이 시작되고 아이히만의 이름이 거론될 즈음 그는 수용소를 탈출해 독일 북부 니더작센주의 소도시를 떠돌고 있었다. 나치에 우호적이던 가톨릭 성직자들의 도움으로 1950년 국제적십자사의 난민 여권을 갖고 아르헨티나로 건너갔다. 쿠데타로 집권한 후안 페론은 파시즘에 경도된 군인 독재자여서 전후 아르헨티나는 나치 잔당의 주요 도피처였다. 7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그는 건설사, 물류회사 등을 거쳐 벤츠사에 취직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민간인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 등의 추적은 종전 직후부터 시작됐다. 비젠탈은 54년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있다는 첩보를 모사드에게 전달했고, 60년 아이히만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아이히만과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동생의 사진을 몰래 찍어 건네기도 했다. 아이히만의 장남 클라우스가 독일 이민자였던 연인 실비아에게 떠벌린 아버지 이야기를 실비아의 아버지가 서독 검찰에 제보했고, 57년 모사드에게 알려졌다. 모사드가 그를 감시하며 신원을 확인하는 데만 약 3년이 걸렸다.

모사드 요원 8명이 퇴근하던 그를 납치, 진정제를 투여해 이스라엘로 호송한 건 아르헨티나 주권을 침해한 국제법 위반 행위였다. 전범 인도에 비협조적이던 아르헨티나 정부는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법정에서 유대인 학살 지휘와 치클론-B 독가스 도입 운용 등 15개 혐의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 받았다.

미 CIA와 서독 연방정보원(BND)이 아이히만의 소재를 파악한 시점은 지금도 논란거리다. 그들은 아이히만이 체포되기 최소 2년 전부터 거처를 알고 있었지만, 당시 나치 잔당 다수가 서독 안보요원으로 활약 중이었다. 미국과 서독은 아이히만이 체포돼 재판을 받을 경우 그런 사실이 폭로될지 모른다고 염려했다고, 2006년 공개된 정부 문서에서 확인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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