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지후 기자

등록 : 2017.10.11 17:59
수정 : 2017.10.11 21:32

이완용이 국정교과서 찬성? ‘차떼기’ 여론조작 수사 의뢰

교육부, 검찰에 수사 의뢰키로

등록 : 2017.10.11 17:59
수정 : 2017.10.11 21:32

의견수렴 결과 발표 전날

53박스 분량 찬성의견서 제출

박근혜 박정희 등 허위 개인정보 기재

주소 같은 중복의견서도 수천장

교육부가 2015년 11월 역사 국정교과서 여론 수렴 당시 제출 받은 찬성의견서의 개인정보란에 '이완용' '박정희' '박근혜' 등의 허위 성명과 주소 등이 기재돼 있다. 교육부 제공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추진할 당시 청와대ㆍ국가정보원(국정원) 등이 여론 조작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교육부는 해당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키로 했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ㆍ국정원의 역사 국정교과서 찬성의견서 조작 의혹과 관련해 이번 주 내로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공무집행방해ㆍ사문서위조 등 혐의)하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진상조사위가 지난달 25일 출범해 조사에 착수한 이후 보름여만에 나온 첫 조치다. 진상조사위는 출범 당일 첫 회의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단계에서의 여론 조작여부’를 조사 대상으로 결정한 데 이어 지난 10일 열린 2차 회의에서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해당 의혹에 대해 수사를 의뢰할 것을 요청하기로 의결했다.

앞서 교육부는 2015년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중ㆍ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구분안) 기간을 끝내고 의견 수렴 결과를 발표하면서 찬성의견자가 15만2,805명, 반대가 32만1,075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 발표 하루 전날인 2015년 11월 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인쇄소에서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민운동본부’ 스티커가 붙은 찬성의견서 박스가 대거 교육부에 배달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차떼기 제출’ 논란이 일었다.

진상조사위 실무를 맡은 진상조사팀은 이 같은 의혹의 사실관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교육부 문서보관실에 보관 중인 103박스 분량의 찬ㆍ반 의견서를 검토했고 이중 일괄 출력ㆍ제출된 의견서가 절반이 넘는 53박스에 달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 박스에는 모두 찬성 의견만 있었고 반대 의견서는 단 한 장도 없었다.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해 이중 우선 26박스 2만8,000여장을 중점 조사한 결과, 허위 개인정보를 기재한 의견서가 다수 발견됐다. 심지어 성명란에 ‘이완용’ ‘박정희’ ‘박근혜’로 적고 이들의 주소지란에는 ‘대한제국 경성부 조선총독부’ ‘청와대’, 또 전화번호란에는 ‘XXX-1910-0829(경술국치일)’이나 ‘XXX-1979-1026(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일)’ 등을 표기한 경우까지 있었다.

동일한 사람이 찬성 이유만 달리해서 수백 장의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이름은 다른데 주소지가 동일한 경우도 1,600여장에 달했다. 찬성 이유를 ‘북한과 같은 뜻의 주장을 하는 역사교과서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똑같이 쓰면서도 전화번호만 달리 기재해 중복 제출한 경우도 있었다.

진상조사팀은 2만8,000여장 중 형식 요건을 제대로 충족한 의견서 4,374장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무작위로 677장을 뽑아 유선전화 조사도 실시했다. 그 결과 조사에 응한 252명의 응답자 중 찬성의견서 제출 사실을 인정한 경우는 129건(51%)에 불과했다. 제출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한 경우가 64건(25%),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이 47건(19%), 인적 사항 불일치가 12건(5%)이었다.

이 밖에도 교육부는 자체조사 결과, 의견수렴 결과 발표 전날 학교정책실장 김모(현재 퇴직)씨가 직원들에게 “밤에 찬성의견서 박스가 도착할 것이므로 직원들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일 교육부 직원 200명은 김 실장의 동원령에 밤 늦게까지 계수작업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부는 2015년 11월 당시 차떼기 제출 의혹이 불거지자 해명자료를 내고 “적법한 방법ㆍ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행정부의 행정행위에 대해 조작ㆍ동원 등의 용어로 국민들의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진상조사위는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메모노트에 ‘교과서 쟁점 사항 대응 논리 개발’ ‘비판세력 빈틈없이 관리’ 등 국정교과서 관련 내용이 적힌 점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추진 비밀 태스크포스(TF)가 운영된 점 등을 미뤄 국정교과서의 여론 개입 과정에 청와대와 국정원, 교육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가 비밀 TF를 운영한 장소로 알려진 서울 동숭동 국립국제교육원에 설치했던 21대 PC가 처리 기록도 없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교과서 정책 관련 이력을 숨기기 위해 교육부가 의도적으로 기기를 파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수사과정에서 교육부의 조직적 공모 사실이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에 대한 신분상 조치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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