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공공 부문을 떠나 민간 부문으로 옮겨왔다.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다가 사립대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무래도 필자의 행동과 생각에는 공공 부문에서 일한 흔적이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지금까지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면서도 나름대로 창의성을 발휘하려 노력해 왔다. 많은 실망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그런 과정에서 과연 우리나라 공공 부문에서도 창의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점점 깊어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정책 기치를 내걸고, 정부 부처 모두가 그런 새로운 기치 아래 새로운 계획들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창의성 있는 정책들이 쏟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런 기대는 쉽게 무너지기 일쑤다.
정부 부처가 창의적인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지나치게 부처 사업이 늘어나는 경향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이른바 ‘원 인 원 아웃ㆍone in one out' 시스템이 (새로운 사업을 도입하려면 반드시 기존 사업 한 개를 포기해야 한다는 원칙) 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즉, 기존 사업에는 담당 공무원들이 투입되어 있고, 또 그 사업에 기대어 있는 공공기관이 이미 설립되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사업이라도 기존 사업을 밀어내고 새 일을 벌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는 격이다. 거의 실효성이 떨어진 사업이라도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필요성을 계속 주장하는 세력으로 남아 있는 한, 없애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 자문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정부가 과감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우이독경으로 느껴진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예산 당국의 역할이 무겁다. 이들이 연한이 다한 기존 사업을 도려내고 새로운 사업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의 창의성 발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더 강한 힘도 있다. 행정부 내 감사 기능과 국회의 국정감사가 바로 그것이다. 정부 및 공공 기관들이 하는 일에 부정부패, 무사안일 등이 스며들지 않게 하려면 이러한 감시 기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롭고 창의적인 사업을 벌이다가 조기에 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 실패한 사업으로 평가되기 쉽고, 과감한 투자를 벌이다가 작은 손해라도 입을 경우 책임자들이 치러야 할 비용은 혹독하다. 심지어 옷을 벗는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장 정확한 예가 아마도 국민연금 투자자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공공과 민간 통틀어 가장 큰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새롭고 창조적 산업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에 첨단 신산업 생태계 조성에 획기적인 기회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투자자들 중 상당수가 연기금 펀드들이다. 실리콘밸리의 이런 투자환경을 잘 아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에 대해 유사한 역할을 맡아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연금 투자 책임자들은 보수적 투자를 할 경우 시장의 평균 기대수익률보다 낮은 수익을 올리더라도 비판은 받을지언정 책임질 일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낮은 비중의 투자라도 신산업 즉, 모험적 분야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았을 경우에는 무거운 책임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종종 신산업과 관련해 우리나라 민간 기업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를 지나치게 꺼린다고 지적하고, 우리 젊은이들이 모험적 창업에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공공 부문의 보고서들을 많이 보게 된다. 공공 부문에서는 모험적인 창의적 투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으면서, 과연 민간 부문에만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주장하면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과거로부터 민간 부분의 행동을 끌어내는 역할을 공공 부문에서 해 온 나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김도훈 경희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