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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의 '미스테리 뉴욕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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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의 '미스테리 뉴욕 사진전'

입력
2014.07.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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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그랜드센트럴 전시회…수십만 명 다녀갔지만 언론 전혀 주목안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대규모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됐지만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뉴시스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대규모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됐지만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뉴시스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거대한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됐지만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뉴시스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거대한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됐지만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뉴시스

모든 것은 뉴욕의 전시회로부터 시작됐다.

‘시신 미스테리’로 돌아온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뉴욕에서 신비의 자연주의 사진작가로 통했다.

그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거대한 사진전을 열었다. 2011년 10월13일부터 22일까지 뉴욕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였다.

전시회는 충분히 뉴스가 될만한 것이었다. 장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한국의 서울역에 견줄만한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은 유서 깊은 역사와 웅장한 규모로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그가 전시회를 연 중앙 홀 옆에 있는 밴더빌트 홀은 미국의 철도왕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따금 대기업과 시정부 차원의 행사가 펼쳐지지만 미지의 예술가가 온전히 개인전을 위해 임대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은 뉴욕 북부의 통근철도 3개 노선과 5개의 지하철이 만나는 곳으로 평일엔 75만 명, 주말엔 100만 명이 넘는 승객이 이용하는 맨해튼의 허브이다. 밴더빌트 홀은 역사 남쪽 42가의 메인게이트로 중앙 현관 역할을 한다.

역사(驛舍)를 이용하는 승객의 최소한 30%가 이곳을 통과했다면 당시 열흘 간 계속된 유병언의 사진전을 잠깐이라도 본 사람은 연인원 20만 명은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사진전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을 포함 약 100점의 사진 작품이 전시되는 등 입이 딱 벌어질만 했다.

게다가 많은 작품들은 내부에 조명이 설치돼 LED처럼 발광하는 방식으로 소개했다. 열흘 간의 엄청난 임대료는 그만 두고라도 전시공간을 꾸미는 것만 해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을 법 했다.

이런 초대형 전시회를 연 주인공이었지만 그는 이름도 얼굴도 공개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프로필도 없었다. 오직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타이틀과 ‘아해(AHAE)’라는 작가명만 나와 있을 뿐.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대규모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됐지만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뉴시스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대규모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됐지만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뉴시스

◆ 기이한 언론의 외면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전시회를 주목한 언론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공간을 임대해준 뉴욕시가 웹사이트에 짤막한 소개를 했을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주최측이 일부러 홍보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취재를 원했다 해도 미스테리의 장본인은 인터뷰를 거절했을테니 말이다.

기자가 아해 전시회를 취재한 것은 우연이었다. 평소 밴더빌트 홀의 행사를 자주 둘러봤지만 알고 간 것은 아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취재는 했지만 기사화할 수는 없었다. 전시회가 미스테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랜드센트럴 터미널 밴더빌트 홀은 양 입구에 문 형태의 거대한 구조물을 세워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보기 드문 초대형 사진전도 이색적이었지만 그 대상이 한국의 자연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아해’란 이름이 생소했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동포 작가일까? 대체 얼마나 세계적인 작가이길래 이렇게 특별한 곳에서 엄청난 전시회를 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 입구에 각각 서있는 구조물의 한쪽은 사진, 다른 한쪽은 음유시인의 서정적인 시구와도 같은 내용이 써 있을뿐 아해가 대체 누구인지, 왜 이런 작품전을 열게 됐는지 말해주는 단서는 없었다.

전시장 안쪽 가려진 곳에 있던 주최측 관계자를 찾았다. 30대의 안경 쓴 한국인이었다. 작가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기자의 신원을 확인한 그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분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인터뷰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언론의 취재를 반기지 않는 정체불명의 사진작가가 아해였다. 그 남성은 웹사이트(www.ahae.com)를 참고하라고 했다. 하지만 웹사이트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의아하기까지 했다.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거대한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됐지만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뉴시스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거대한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됐지만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뉴시스

◆ 2년 간 창문 통해 100만여 장 사진 촬영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자신의 집 창문밖에서 바라본 풍경들을 무려 100만 장 넘게 찍었고 그중에서 고른 작품들을 전시장에 걸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100만여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고? 2년 간 쉬지 않고 찍었다 해도 대략 하루에 140여장을 촬영한 셈이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만일 당신이 100일이 넘게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사진을 찍는다면 그 사진은 어떤 걸 보여줄까. 한국의 선지자 아해를 만나보라. 아해의 작품들이 사진전으로 마련된다. ‘나의 창문을 통해서’는 사계절 창문 밖으로 통해 바라본 세상을 촬영한 100장이 넘는 사진들이다.”

괴이했다. 집안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2년 간 촬영했다니 말이다. 그런데 피사체 속에 나타난 대상은 아주 다양하고 풍성한 자연이다. 들짐승 날짐승이 단골 메뉴였다. 그는 자연주의자니까.

그의 집이 비무장지대 안에라도 있는 것일까. 창밖으로 이런 파노라마의 대자연을 만날 수 있다니. 필경 집안 창문은 동서남북으로 다양하게 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넓은 발코니에 나가서 자유로이 앵글을 활용하거나 산책 중에 촬영하는 ‘파울 플레이(?)’를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100만여 장의 사진 중 90%만 창밖을 통해 촬영했다고 소개한 내용도 눈에 띄었다. 그렇다 해도 아해는 최소한 도덕적인 작가이다. 자연을 건드리지는 않았으니까. 500년 된 금강송의 사진 각도가 안 나온다고 주변의 200년 된 금강송 수십 그루를 베거나, 동물들을 괴롭히고 때로는 해치면서 인위적으로 연출하는 작가들도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유명한 자연주의자이자 사진작가인 아해는 거의 100만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그의 작품 90%는 집안의 창문을 통해 촬영한 것들이다. 매혹적으로 아름다운 한국의 시골 정경을 볼 수 있는 그의 사진들은 가장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인위적이지 않고 작위적이지 않다. 자연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개별적인 관점에서 사진들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전시회는 우리의 지속적인 건강과 복지와 관련하여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대규모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됐지만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뉴시스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대규모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됐지만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뉴시스

◆ 차남 “그 누구도 아버지와 같은 작가는 없어”

그와 관련된 유용한 한 가지의 정보가 있다면 아들의 등장이다.

“아해의 사진전 ‘나의 창을 통해서’는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운 속성을 가장 순수하며 가장 원초적으로 보여준다. 아해의 아들 키이스 유(Keith Yoo)와 대변인은 ‘어떤 사진작가도 이렇게 엄청난 작업량을 통해 만든 것은 없었다’고 말한다. ‘특히 인위적인 조명과 무대, 편집 등 일체의 인위적인 편집이 없는 것들이다. 이것은 가장 단순하지만 보기드문 프로젝트이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키이스 유는 차남 유혁기씨의 미국 이름이다. 그리고 엄청난 대자연을 촬영한 그의 자택은 안성의 금수원 안에 있었고 작업을 하는 개인 스튜디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들을 많이 걸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는지 디스플레이가 어지럽다는 느낌이었다. 솜씨좋은 큐레이터가 가세하지 않은 듯 작품들을 주제화하지도 않았다. 작품의 규모엔 압도됐지만 기자의 눈에 그렇게 높은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2008년 이전에 작업을 했다는 내용이 없으니 아해의 사진작가 경력은 그리 내세울 게 없는지도 모른다. 사실 성능 좋은 최고급 카메라와 장비들로 줄기차게 100만 장을 찍으면 훌륭한 사진 수백 장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얼굴없는 사진작가, 자연주의 사진작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주의와 선진 시민들에게 민감한 환경 보호를 강조하면서 아해의 이미지 마케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언론의 주목을 피하면서도 그는 뉴욕 전시회 이듬해인 2012년 루브르의 튀를리 정원, 2013년 베르사이유궁에서 잇단 전시회를 열었다. 115만 유로(약 15억원)의 엄청난 기부금을 낸 대가로 알려졌지만 그랜드 센트럴이라는 뉴욕의 랜드마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 경력이 ‘국제적인 작가’의 행보에 분명 도움이 됐을 터이다.

사업가이자 종교 지도자인 그가 말년에 자연주의 사진작가로까지 포장하게 된 것은 순수한 예술의 열정이었을까. 아니면 이 또한 치밀한 사업의 한 방편이었을까.

갑오년 비극의 정점인 세월호 참사 이후 그는 사상 최고액의 상금이 걸린 현상수배자가 되었고 의문의 변사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해의 웹사이트(www.ahae.com)는 출생과 사망연도를 ‘1941∼2014’로 표시해 놓은 채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본래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언어로 서비스됐지만 초기 화면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바탕 화면에 하나씩 떠오르는 일곱 개의 애도 메시지들이다. ‘당신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거에요…’(마이클) ‘당신은 정말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잭)….

그리고 피터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내 주위 사람들과 함께 당신의 사상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당신의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을 세상이 알도록 진실을 위한 싸움을 하겠습니다.’

미스테리의 삶이요, 미스테리의 죽음이다. 그러나 유병언 회장의 죽음은 세월호 참사 규명과 무관하다. 서서히 침몰하는 배에 갇힌 가녀린 목숨들을 왜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느냐가 ‘화두’이므로.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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