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아침을 열며] 정규직만을 위한 불평등한 복지국가

입력
2017.04.20 13:29
0 0

우리도 복지국가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6년 전체 취업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32.8%(여성 41.0%)이다. 임금노동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야기다. 정부의 공식통계가 이렇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8월 현재 비정규직 규모는 무려 44.5%에 이르고(여성 54.5%),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분류하고, 특수고용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분류한 오류를 수정하면 비정규직의 비중은 50%가 넘는다고 추정했다. 임금노동자 둘 중 하나가 비정규직이다.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OECD 국가 중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벌어져 있다는 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5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경우 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1억 원에 달하는 데 반해 2차 협력사 사내하청 노동자의 연봉은 2,200만 원으로 둘 간의 격차가 무려 5배에 이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시민이 실업, 노령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임금노동을 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소득을 보장해주는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과 같은 복지제도도 대부분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고용불안으로 인해 실업급여가 가장 필요한 비정규직의 실업급여 적용률은 38.9%에 그치는 데 반해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의 실업급여 적용률은 84.7%에 달하고 있다.

비정규직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이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의 비율은 무려 26.8%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자영자의 비중이 11.5%에 그치고, 노르웨이와 미국의 비중은 각각 7.2%와 6.5%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더욱이 자영업자의 절반 이상은 가처분 소득이 백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며, 대부분 사회보험으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다.

안정적 일자리와 높은 소득에 더해 실업, 노령 등의 사회적 위험이 닥쳤을 때 소득을 보장해주는 복지제도까지 모든 것이 정규직 노동자에 집중된 것이 오늘날 한국 복지국가의 현실이다. 그야말로 ‘정규직만을 위한 더러운 세상’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1960년대 이래 한국 사회가 걸어온 수출주도형 경제구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은 생산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출부문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고용안정, 급여, 복지제도를 집중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고 지레짐작하지는 말라. 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를 하향 평준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규직이 과한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의 상태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본조건과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이다. 고용안정,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임금수준, 실업, 노령 등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복지제도는 특권이 아니라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다. 이런 상황에서 육아휴직급여를 확대하고,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을 개선하는 등의 복지공약만으로는 ‘정규직 중심의 복지국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늦었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계속된 수출주도형 경제의 방향을 내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영세자영업자의 생존을 보장해주며, 이들 모두가 사회적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공적 복지제도의 대상이 되는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 2017년 한국 사회의 핵심과제는 공공부문의 고용을 확장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보편적 수당 제도를 도입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공정한 조세와 누진적 보편증세를 실행하는 것이다. 정규직 중심의 복지국가에서 벗어나 모두를 위한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