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대법관 적절한 경호 없었고
지역 판사는 확인도 않고 “자연사”
뇌출혈, 독살, 질식사 등 주장 나와
유가족은 부검 반대… 미제로 남을 듯
미국 대법원의 이념 지향을 보수에서 진보로 송두리째 바꾸고, 2016년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파괴력 때문일까. 지난 13일 숨진 앤터닌 스캘리아(79) 대법관의 죽음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사망 수일 만에 음모론이 제기된 건 ‘거물’ 대법관에 대해 경호 및 응급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시신으로 발견된 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텍사스 시골(프레시디오 카운티) 치안판사가 ‘타살 의혹 없는 자연사’라고 서둘러 판정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확인되고 있어 스캘리아 죽음에 드리워진 미스터리는 더욱 커지는 분위기이다.
15일 미국 언론에 따르면 스캘리아 대법관의 죽음은 사전 경호 및 응급의료 지원 실패에서 비롯됐다. 수도 워싱턴에서 3,000㎞나 떨어진 멕시코 접경 농장에 초대 받은 고령의 대법관이 적절한 경호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방보안국도 스캘리아 대법관 요청에 따라 농장에 머물 때 근접 경호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사망 당시에도 경호를 책임진 보안관이 현장에 없었다고 인정했다.
시신 발견 후 사후 처리도 의문투성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워싱턴의 강력ㆍ살인 수사팀을 이끌었던 윌리엄 리치 전 국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분야 전문가로서, 숨진 대법관에 대해 부검이 실시되지 않았다는 점에 경악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스캘리아 대법관에 대한 사망 확인은 전문가들이 직접 시신을 살펴보지도 않은 채 이뤄졌다. 전날 미국 언론에 보도된 사인인 ‘심근경색’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프레시디오 지역을 관할하는 신데렐라 구에바라 치안판사가 ‘자연사’라고 선언했으나, 그는 현장에 가지도 않았다”고 보도했다. 텍사스 주법은 현장 확인 없는 판사의 사망확인을 합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문제는 대법관 시신을 현장에서 살펴본 사람도 의사가 아닌 경찰이라는 점이다. 구에바라 판사는 ‘외부 침입 흔적이 없다’는 보고만 듣고 사망 확인서에 곧바로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문이 증폭되자, 구에바라 판사도 미국 언론이 사인을 ‘심근경색’이라고 보도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 질문에 ‘심장이 멎었다’고만 대답했는데, ‘심근경색’이라는 단정적 보도가 나왔다”고 해명했다.
음모론을 제기한 리치 전 국장은 심근경색 이외에도 다양한 사인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뇌출혈일 수도 있고, 독극물에 의한 타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질식사는 눈과 입술의 출혈 여부로, 심장마비를 위장한 독극물 투여는 시신의 입 냄새를 통해 알 수 있다”며 “텍사스 경찰과 판사가 이런 절차를 거쳤는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미국 정치인들의 급사처럼 스캘리아 대법관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도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선 부검이 필수적이지만, 유가족들은 “시골 판사의 사망확인으로 법적 절차가 마무리됐다”며 고인의 시신에 칼을 대는 걸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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