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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익법인에 주식기부와 조세법률주의

입력
2017.04.2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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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가 조기 대선으로 시끄러운 사이 법률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지난 목요일 대법원에서 선고되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주식 형태로 장학재단에 기부했다가 기부를 받은 공익법인과 함께 가산세를 포함해서 225억원 상당의 증여세 부담을 안게 된 어느 기업가에 관한 사건이다.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의 창업자인 기부자는 2003년 장학사업에 뜻을 두고 당시 평가액 180억원에 이르던 수원교차로 주식의 90%를 대학의 장학업무 등을 위해 설립된 공익법인에 출연하였다. 선한 의지에서 이루어진 기부자의 결정은 수원세무서가 2008년 공익법인에 1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하면서 본격적인 법정 다툼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증여세 부과 결정이 위법하다는 수원지방법원의 1심 판결, 증여세 부과 결정이 적법하다는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을 거쳐서 지난 목요일, 전원합의체로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은 3인의 소수의견을 제외한 나머지 대법관 전원일치 결정으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에 대해 대법원 공보관은 “과세처분도 법치국가적 한계를 준수할 때만 비로소 용인될 수 있다는 원칙을 선언하고 선의의 기부를 장려할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사안의 구체적 타당성을 지키려고 노력한 대법원 다수의견의 결론에 대해 언론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필자도 그 결론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조세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평가하고 선의의 기부가 장려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갖기에는 사안의 배경이 간단하지 않다.

사건의 주 쟁점은 기부자의 기부행위가 공익법인 주식출연 방법으로 증여세를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한 요건하의 주식출연 경우에는 세금을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는 법 문언의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기부자의 선한 기부행위를 법률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보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법률해석을 시도했다. 반면, 대법원 소수의견과 서울고등법원은 조세행정의 예측가능성 보호를 위해 상대적으로 법 문언에 충실한 법률해석을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대의견을 제시한 3인의 대법관들은 다수의견이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 기부에 대해서 증여세 과세를 정하고 있는 관련 법률의 문언과 입법취지에 반하는 법률해석이라고 비판했다. 그 논리에 따르면 공익법인을 이용해서 기업을 간접적으로 승계하려는 다른 출연자들에게 손쉬운 조세회피의 방법을 제공할 것이라는 견해다.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이 충돌하는 상황과 관련해서 두 가지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법률 문언에 충실한 법 적용이 구체적 타당성을 벗어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사법부의 구성원인 법관이 얼마나 유연하고 탄력적인 법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특히 법문에 나타난 입법자의 의도가 불명확하거나 모호한 경우 법관이 법률 해석 작업을 통해 실질적으로 새로운 입법활동을 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정치 과정의 과잉 입법이 법률 해석 과정에서 사법부에 의한 무리한 확장해석 혹은 유추해석의 필요로 이어질 수 있음에 관한 것이다. 다원주의적 정치 과정의 실패가 의회에서 걸러지지 않으면 과잉 입법의 문제가 발생하고 규범과 현실의 괴리로 이어진다. 현실과 괴리된 규범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단계에서 사법부는 법률 해석을 통해 실질적으로 입법의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각 정당 후보들의 난립하는 공약(公約)들이 공약(空約)에 그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공약들이 과잉 입법으로 이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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