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공식 지정하고 한국에 대해서도 통상 압력을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 한국과 미국의 경제 수장이 양자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대북제재에 대해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기로 합의했고, 민감한 현안인 환율 문제 등도 논의 대상에 올렸다.
3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재무장관회의를 개최했다. 미국 재무장관이 한미 양자회의 때문에 한국을 찾은 것은 2007년 3월 당시 헨리 폴슨 장관 이후 9년여 만이다. 루 장관은 유 부총리를 만나기 앞서 이날 오전 한국은행을 방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비공개 회동도 가졌다.
루 장관은 회의에 앞서 “오늘 다룰 주요 의제 중 하나는 북한에 대한 양국의 조율된 노력”이라며 “북한의 도발 행동에 대한 한국의 단호한 대응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국제금융 시스템에 접근하고 이를 악용하는데 활용하는 수단과 방법을 파악하는데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양국은 미국이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한 것과 관련,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에 대한 공조 체제를 재확인했다. 유 부총리는 “미국의 대북 제재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며 “북한에 대한 주유 자금세탁 우려대상국 지정 조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루 장관은 이에 대해 “앞으로도 한미 양국간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답했다.
우리 측에서는 또 경제제재 해제 이후 이란과의 국제결제시스템 조기 구축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이란과의 교역에서 달러화가 아닌 유로화 등 제3의 통화로 거래를 하려면 미국 재무부의 인정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우리 측의 입장을 전달했다. 루 장관은 이에 “조속한 시일 내 적절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변했다. 유 부총리는 또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 미국 측과 협력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양측은 이날 민감한 환율 문제도 테이블에 올렸다. 앞서 미 재무부는 4월말 우리나라를 중국, 일본, 독일, 대만 등과 함께 ‘환율조작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지난 2007년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가 85억달러에서 지난해 258억달러로 3배 이상 가까이 급증하는 등 미국 내에서는 현재 한국과의 불균형적인 통상에 대한 불만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유 부총리는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통상 문제는 제 소관이 아니어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환율에 대해서는 아주 급격한 변동이 있지 않으면 개입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며 “(미국도) 이해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루 장관이 이례적으로 한은 총재를 만났고, 미국측이 최근 통상 압력 수위를 높여온 점 등을 감안할 때 환율과 통상 문제 등을 둘러싼 적잖은 논의가 있었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세종=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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