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한국일보·국민건강보험공단 공동주최 ‘201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사진 공모전

알림

한국일보·국민건강보험공단 공동주최 ‘201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사진 공모전

입력
2018.07.26 05:00
수정
2018.07.26 10:01
0 0

● 사진 부문 최우수작

임병조 씨 ‘꽃보다 예쁜 사람’
임병조 씨 ‘꽃보다 예쁜 사람’

● 체험수기 부문 최우수작 - 해피데이케어센터 장용석 씨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지난 3월 말 우리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시던 한 어르신을 요양원으로 이전시켜 드렸다. 보호자와 오랜 상의 끝에 결정한 일이었고,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왜 필요한지 생각할 수 있었다.

신00 어르신은 아들의 손에 이끌려 처음 센터를 방문하셨다. 어르신은 참 고우시고, 체구도 작으신 분이셨다. 하지만 보호자와 상담결과 우리는 이 어르신이 모시기 힘든 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들이 어르신이 적응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많이 걱정하셨다. 아들은 어르신이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당부하기도 했으며 센터에서 요청하는 사항이 있다면 무엇이든 맞추고 돕겠다고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어르신은 다른 어르신을 공격하거나 욕설을 하는 심각한 문제 행동으로 이미 여러 시설을 전전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문제 행동은 상관없지만, 같이 이용하고 있는 다른 수급자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경우에는 별 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문제 행동이 지속되고 다른 보호자나 어르신의 항의가 계속되면 해당 수급자는 결국 퇴소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렇게 어르신은 여러 시설을 옮겨 다니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신00 어르신의 가장 큰 문제 행동은 배회였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어떤 활동에 집중하는 시간이 굉장히 짧았고, 공백시간이 생기면 항상 배회증상이 나타났다. 키우는 강아지를 찾거나 집에 가려고 문을 열어달라고 하셨다. 하루 종일 “문 열어, 문 좀 열어줘!” 하는 말을 반복하시며 문을 발로 차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셨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행동을 저지하면 욕설을 하고 심해지면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셨다.

직원들은 어르신을 모시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였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어르신을 공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먼저 해결하였다. 다행히 우리 시설은 층이 2개 층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어르신과 다른 분들을 다른 층으로 분리해 문제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 상황을 통제하였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다른 어르신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경우 직원이 옆에 꼭 붙어서 진행하였다.

또한 배회행동을 해결하기 위해 어르신과 함께 산책을 나가 보기도 하였다. 어르신이 가고 싶어하시는 데로 가시게 했다. 문을 열어드리고 어르신이 가는 데로 그대로 가게 하시되, 직원 한 명이 따라붙어 위험한 행동을 할 때만 도움을 드리는 방법이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주변을 보지 않고 길을 건너려고 하는 것이었다. 신호등이 없는 찻길을 그냥 건너시려 하거나 신호등에서 멈추지 않고 빨간불에도 그냥 건너시려고 하는 경우가 있어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그뿐이 아니라 신호등을 기다리고 서있는 행인의 가방 속을 보려 하거나 버스정거장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는 행동들이 있었다.

배회를 관찰하며 있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어르신이 센터에서 너무 멀리 나가려 한다는 것이었다. 1시간을 넘게 걸어도 센터로 돌아오지 않으려 하셨기 때문에 다시 센터로 돌아오게끔 안내하는 것이 어려웠다. 단기기억과 장소 지남력이 매우 낮은 수준이셨기 때문에 중간중간 방향을 전환해 센터 근처를 빙글빙글 돌 수 있게 안내를 하려 하였다. 하지만 어르신이 고집을 부리면 너무 멀리 나가게 되어 센터로 돌아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더군다나 직원 한 명이 계속 붙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기 때문에 센터운영 전반에서도 어려움이 생겼다.

그래도 밖에 나갔다가 오시면 나가시려고 하는 행동이 조금 줄어드는 경향이 있어서 건물 안에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옥상에 올라갔다 온다든가 하는 방법을 종종 사용하곤 했다.

어르신을 모시면서 또 다른 어려움은 화장실 이용 문제였다. 어르신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서 대·소변처리를 혼자 하시기 어려워졌다. 기저귀를 처음 착용하였을 때는 자존심이 강한 어르신이 케어하는 직원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에도 기저귀 케어를 할 때는 공격적인 경우가 많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욕을 하기 일쑤였다.

어르신이 항상 욕을 하기만 하셨던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평소에 변비가 있어 며칠 동안 변을 보지 못했던 어르신께서 기저귀에 설사를 하셨다. 기저귀 교체를 위해 직원이 변기에 앉혀 드리자 갑자기 손으로 변과 항문을 문질러 변기와 화장실 벽에 닦으셨다고 했다. 본인이 뒤처리를 하려고 하셨던 모양이었다. 그 손으로 다시 옷을 입으려고 하셔서 옷에 다 묻는 일까지 발생해 목욕을 시켜 드리고 새 옷으로 교체해 드렸다고 했다.

어르신을 먼저 케어한 이후 앉혀 드리고 그 직원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나왔을 때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어르신께서 청소하고 나온 직원을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안아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수고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았다. 평소 문 열어 달라고 하시거나 화내는 일을 제외하고는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 진심이 느껴졌다. 후에도 이 같은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이렇게 어떤 때는 고맙다고 하며 잘 지내시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욕설과 폭력이 이어졌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은 지속적으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하였다. 이불이나 수건 더미를 드리고 정리해야 한다고 하며 일거리를 드리거나 색칠하기와 같은 활동지를 드려 관심을 전환하기, 가짜 돈을 드리며 진정시키기,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등의 시도를 해 보았다. 어르신을 모시면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대부분 실패하곤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고민과 사건을 겪는 동안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결국 어르신의 문제행동을 해결하는 묘책은 결국 찾지 못했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자 직원들도 그리고 어르신도 어느 정도는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직원들도 다들 많이 힘들어했다. 계속 소리를 지르는 통에 다른 일을 할 때마다 힘들기도 했고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할 때는 도망다니기도 해야 했다. 대소변 뒤처리를 하느라 수시로 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또 화장실 청소를 다시 해야 하는 것도 굉장한 부담이었다.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다른 어르신에게 반말을 하고 욕설을 하는 통에 센터 전체의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예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직원들도 어르신의 웬만한 행동에도 또 그러셨구나, 하면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른 수급자 어르신들 역시 저분은 저런 사람이니까, 하면서 이해하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어르신에게 익숙해질 무렵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르신을 모시러 가면 아침에는 아들이 항상 어르신을 모시고 나왔지만, 집에 모셔다 드릴 때에는 종종 아들이 일이 늦게 끝날 때면 현관에까지 어르신을 모셔다 드리고 나와야 할 때가 있었다. 야간근무자의 퇴근 때문에 더 기다리지 못하고 그렇게 모셔다 드리고 나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이후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근무자가 어르신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나온 이후, 아들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어르신이 혼자 집을 나와 배회를 하시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사실 센터를 이용하기 전에도 아들이 출근하고 나면 어르신이 집을 혼자 나가셔서 실종되는 일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경찰에도 실종 등록이 되어 있고 옷에도 전화번호 및 안내용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러다가 센터를 이용하시고 난 이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다시 저녁에 또 나가는 행동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집에서 나가셨을 때는 먼 곳을 가지는 않으시고 동네를 배회하시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거나 동네 이웃분들이 도와 주시거나 해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직원들도, 또 보호자도 그에 대한 걱정이 커져만 갔다. 그러다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병원에서 의사와 상담 끝에 저녁에 수면제 및 안정제 투약을 변경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문제는 안정제를 투약하자 어르신이 너무 무기력해지셨다. 온몸에 힘이 없어졌고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몸이 굽어 밥을 혼자 먹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걸음걸이가 불안정해서 의자에 앉으실 때 비틀거리는 경우가 많아 낙상의 위험도 높아졌다. 반면 배회증상은 줄어들기는 했다.

덕분에 어르신을 돌보는 데에 필요한 노력도 줄었으나 우리는 오히려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잘 걷고 잘 먹던 신체 건강하시던 어르신이 약 때문에 무기력해진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안쓰러웠다. 어르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용한 약물이 오히려 어르신을 구속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물 투약 후 어르신의 잔존능력도 더 저하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시간과 에너지를 더 쓰더라도 약물을 줄이는 방법은 없는지 보호자와 상담을 시도해 센터 이용 중에는 최대한 약물을 억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야간에 외출하시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급기야 어르신이 야간에 외출하셨다가 길에서 미끄러져 귀가 찢어져 응급실을 다녀오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앞으로 더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어르신의 상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아들이 일 때문에 야간에 항상 같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도와줄 수 있는 다른 가족도 없었기 때문에 야간에 외출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어르신을 요양원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아들과 논의를 하게 되었다.

사실 요양원으로 입소를 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진작부터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요양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요양기관에 대해 신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어르신을 케어하며 우리 직원들이 자주 연락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아들 및 어르신과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요양원 및 요양기관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결국 아들도 우리의 노력을 이해했고 마음의 문을 열고 요양기관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극복하였다.

그럼에도 아들은 요양원을 이용하기보다는 주야간보호시설을 계속 이용하길 희망했다. 조금 더 어머니를 자주 보고, 조금이라도 더 어머니를 챙겨드리고 싶은 것이 그 이유라고 했다. 이러한 아들의 효심에 우리 직원들도 할 수 있는 한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어르신을 모셨던 것이었다.

하지만 어르신의 안전상에 문제가 커지자 더 이상 감상적인 이유로 어르신의 입소를 늦출 수 없겠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아들을 설득하였다. 아들도 결국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요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직원들도 건강보험공단의 홈페이지의 평가점수 등을 검토해 본격적으로 어르신을 잘 돌볼 수 있는 요양원을 수소문하였고 결국 한 기관을 선정하게 되었다. 그 요양원은 이미 정원이 다 차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대기를 하였고 그때까지만 어르신이 센터를 다니시기로 결정하였다.

얼마 뒤 요양원에서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우리는 어르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드리게 되었다. 어르신이 마지막으로 출석하셨던 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단기기억이 거의 없어 10분 전에 한 말도 기억 못하시던 어르신께서 마지막 날은 어쩐지 정신이 또렷해 보이셨다. 마치 그날이 마지막으로 센터에 오시는 날인 줄 아시는 것처럼 직원들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던 어르신이었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 모두가 시원섭섭해 하고 있었는데, 어르신께 안녕히 가세요, 라고 했을 때 어르신이 나를 안아 주시며 내 귓가에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마워, 네가 나한테 잘 해준 거 알아.”

정말로 우리의 노력을 기억하셔서 그랬던 것인지, 혹은 다른 날처럼 그날도 그냥 기분이 좋아서 고맙다고 말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참 마음이 따뜻해졌던 말이었다. 어르신을 보내드리며 어르신 때문에 가장 고생을 많이 했던 직원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아들의 상황과 어르신의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가족에게 가장 적합한 추천을 해드릴 수 있었다. 어르신 통해 제도의 필요성과 우리의 역할을 정말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