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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 늙었지예?” 무릎 꿇고 눈물 흘린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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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 늙었지예?” 무릎 꿇고 눈물 흘린 나훈아

입력
2017.11.05 13:4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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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홀 복귀 무대서

자신의 인생을 담은 공연에

50~70대 관객, 눈물 쏟아

“고갈된 꿈 찾으러 오지여행”

오랜 공백기의 이유도 설명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에서 열린 나훈아의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이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해질녘 공연장 지붕엔 ‘나훈아’란 문구가 빛났다. 나훈아는 무대에서 자신의 성을 영어로 발음한 ‘NA’가 새겨진 옷들만 입고 올랐다. 그에게 나훈아는 자랑이자, 브랜드였다. 양승준 기자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에서 열린 나훈아의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이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해질녘 공연장 지붕엔 ‘나훈아’란 문구가 빛났다. 나훈아는 무대에서 자신의 성을 영어로 발음한 ‘NA’가 새겨진 옷들만 입고 올랐다. 그에게 나훈아는 자랑이자, 브랜드였다. 양승준 기자

“보자기 하나 메고 지구 다섯 바뀌 돌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 가수 나훈아(70)는 11년 만의 복귀에 대한 미안함을 노래 ‘예끼 이 사람아’로 전했다. 무대 스크린에 자막으로 ‘첫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된다’ 하면서 팬들을 위해 부른 미공개 자작곡이었다.

마지막 노래로 ‘내 청춘’을 부르던 나훈아의 부리부리한 눈에는 결국 눈물이 흘렸다. 그는 무대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지난 7월 새 앨범 ‘드림 어게인’을 내고 오랜 만에 돌아왔는데도 자신을 반겨주는 관객을 보며 다시 꿈을 찾은 듯 감격스러워했다. 나훈아는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인데 꿈이 고갈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2006년 돌연 무대를 떠났다. 그는 “보따리 하나 메고 지구 다섯 바퀴를 돌았다”며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나훈아가 찾은 곳은 오지였다. “잘 사는 나라는 별도 달도 안 보여서”라며 “꿈을 찾으러 떠난 여행”이었다고 오랜 공백의 이유를 처음으로 직접 들려줬다.

3일부터 5일까지 나훈아의 공연이 열린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 외벽에 나훈아의 새 앨범 재킷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양승준 기자
3일부터 5일까지 나훈아의 공연이 열린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 외벽에 나훈아의 새 앨범 재킷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양승준 기자

한 편의 영화처럼… 나훈아, 스타이자 광대

나훈아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강렬한 모습은 안타깝게도 단상에 올라 바지 지퍼를 내리는 일이었다. 건강 악화설과 일본 폭력조직관련설 등이 일파만파 퍼져 참다 못해 2008년 기자회견을 열어 소문을 부인했을 때 모습이다. 나훈아는 이번 공연으로 ‘소리꾼’으로서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 절창은 여전했다. 나훈아는 “11년 노래를 굶었다”고 열정을 불태우며 ‘남자의 인생’ ‘아이라예’ 등 신곡을 비롯해 ‘홍시’ ‘영영’ ‘건배’ ‘추풍령’ 등 히트곡을 맛깔나게 열창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공연 기획은 압권이었다. 나훈아는 천둥이 요동치고 번개가 번쩍인 뒤에 무대에 서 공연을 이어갔다. 무대는 수많은 전구들이 촘촘히 빛을 내 은하수같이 꾸며졌다. 할리우드 영화 ‘토르’ 속 신이 지구에 내려오듯 나훈아는 40여 분간 말 한 마디 없이 10곡을 연달아 부르며 ‘트로트 황제’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무대를 수놓은 형형색색의 레이저는 클럽 공연을 방불케 했다. 기존 트로트 공연에선 볼 수 없는 세련되고 화려한 무대였다.

나훈아는 ‘익살꾼’이었다. 그는 공연 중반부터 ”내 오늘 알아서 할낀게”라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관객과 격의 없이 소통했다. “내 별로 안 늙었지예”라며 넉살까지 떨었다. 나훈아는 스타로서의 신비함과 광대로서의 친근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관객을 휘어 잡았다.

빨간색 물이 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 나훈아는 ‘무대 막에 센서가 달려 큰 박수와 환호가 있어야 열린다’는 자막을 띄워 신세대처럼 재치 있게 공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는 그간 무대에 서진 않았지만, 세상의 소식엔 귀를 열어두고 있었다. 나훈아가 ‘고향으로 가는 배’를 부를 땐 스크린에 김정일의 장남으로 지난 2월 암살된 김정남의 사진이 떴다. 나훈아는 “난 정치를 모르지만, 이 사람이 노래방에서 생전 이 노래를 10번 불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나훈아는 ‘예끼 이 사람’에선 ‘소문에는 아프다던데’라고 노랫말을 붙여 자신을 둘러싼 와병설을 풍자해 눈길을 끌었다.

'트로트 황제'의 귀환에 '은빛 중년'들이 출동했다. 공연장엔 나훈아 팬카페 회원들이 나와 관객들에 차를 대접했다. 양승준 기자
'트로트 황제'의 귀환에 '은빛 중년'들이 출동했다. 공연장엔 나훈아 팬카페 회원들이 나와 관객들에 차를 대접했다. 양승준 기자

日 ㆍ美서도… 세월 잊은 ‘은빛 오빠 무대’

“오빠!” ‘트로트 황제’의 귀환에 공연 내내 객석에선 함성이 떠나지 않았다.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많았다. 공연 직후 만난 최덕순(54)씨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진 가수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며 “많이 기다렸던 공연이라 더 감격스러웠다”며 눈물을 흘렸다. 경기 동두천에 중화요리 식당을 운영하는 최씨는 가게 영업을 직원들에 부탁하고 사위가 구해준 표를 들고 남편과 공연장을 찾았다.

나훈아 공연장엔 50~70대 관객들이 주를 이뤘다. 가까운 일본을 비롯해 태평양 넘어 미국에서까지 건너온 관객도 있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7명의 관객에 매진된 표를 어떻게 구했느냐고 묻자 사위 혹은 자식들이 구해줬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에서 나훈아를 보러 상경했다는 김영옥(72)씨는 “일본에 사는 친구를 비롯해 고향 친구 11명이 함께 왔다”며 “모두 자식들이 (표를) 구해줬다”며 웃었다. 나훈아 앞에선 ‘은빛 중년’도 소녀가 됐다. 김씨는 신곡을 들어봤느냐고 묻자 “늙어도 이런 건 할 줄 안다”며 휴대폰을 꺼내 유튜브에서 나훈아의 신곡 ‘남자의 인생’ 뮤직비디오를 틀어줬다.

나훈아의 서울 공연은 같은 장소에서 5일까지 사흘 동안 열렸고, 1만여명이 다녀갔다. 티켓 예매 10여분만에 표가 동이 날 정도로 ‘티켓 대란’이 벌어졌던 이번 공연은 암표상들이 공연장에서 정가(12만~16만 원)의 3~4배가 넘는 가격으로 호객 행위를 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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