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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논리보다 호감이 더 중요한 이유

입력
2018.05.28 19: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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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논리와 근거를 내세운다. 하지만 썩 결과가 좋지 않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당연히 논리와 근거로 설득되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우화집이자 저자 특유의 돌직구 화법이 무릎을 치게 하는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편’은 ‘논리’만으로 설득하기 어려운 점을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미자하(彌子瑕) 이야기.

춘추시대 위나라 영공은 자신을 시중드는 여러 미동(美童)을 두고 있었는데, 그 중 미자하(彌子瑕)가 단연 최고의 총애를 받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미자하는 왕의 명령이라 속이고 왕의 수레를 몰래 타고 궁궐을 나가 어머니를 문병했다. 당시 법에 따르면 허가 없이 몰래 왕의 수레를 탄 자는 월형(刖刑, 발꿈치를 베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 신하들은 미자하에게 형벌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전해들은 왕은 ‘이 얼마나 지극한 효심인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월형의 죄까지 범하다니!'라고 말하며 오히려 미자하의 효심을 칭찬했다.

또 언제인가 미자하가 왕을 수행해 과수원에 유람을 갔다. 미자하가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먹으니 맛이 너무 좋아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건넸다. 그 모습을 본 신하들은 미자하가 감히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건넸으니 불경죄(不敬罪)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때도 영공은 ‘이 얼마나 나를 생각하는 정이 깊은가. 자기 입은 생각하지 않고 내게 주다니!’하며 오히려 미자하를 칭찬했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용모와 안색이 변하고 왕의 총애도 예전만 같지 못하게 되자, 왕은 이렇게 말하며 미자하를 궁궐 밖으로 쫓아버렸다. ‘이 놈은 일찍이 나를 속여 내 수레를 몰래 타고 궁궐 밖으로 나갔고, 심지어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내게 먹인 놈이다.’

이처럼 한 번 애정을 잃으면 이전에 칭찬을 받은 일도 오히려 화가 돼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비자는 위 고사를 언급하여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과 끝이 변함없이 한결 같았는데 전에 어질다고 여겼던 것이 뒤에 가서 죄가 된 것은 임금의 사랑과 임금의 변화 때문인 것이다. 임금의 총애가 있으면 그 지혜가 합당해져 더욱 친근해지고, 임금의 미움이 있으면 그 지혜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죄가 되고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탕왕(湯王)과 이윤(伊尹) 이야기,

은(殷)나라 탕왕(湯王)은 훌륭한 성인이고 이윤(伊尹)은 뛰어난 신하였다. 사실 이윤이 하급관리일 때 그가 탕왕에게 충언을 해도 탕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윤이 탕왕에게 충언을 해서 거절을 당한 회수가 무려 70회에 이르렀다. 이윤은 어떻게 해야 자신의 충언이 탕왕에게 잘 받아들여질 지를 고민했다. 가만 보니 탕왕은 맛있는 요리 먹기를 좋아하는 식도락가였다. 이에 이윤은 자신이 직접 솥과 도마를 들고 주방일을 맡은 뒤 진기한 요리를 탕왕에게 바치며 가까이에서 친숙해진 다음에야 충언을 했고, 그제서야 그 충언이 탕왕에게 받아들여져 결국은 재상으로까지 등용됐다.

뛰어난 이윤도 ‘논리로서의 설득’이 먹혀들지 않자, 스스로 몸을 낮춰 요리를 배운 후 ‘요리사’로서 지은 맛있는 음식으로 ‘왕과 친숙해 져서야’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럼 언제나 아부를 하며 살란 말이오?’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간은 논리보다 자신이 호감을 갖는 사람의 말에 더 잘 설득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간과하지 말고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현명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호감을 얻지 못한 채 오로지 논리만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갖은 고생을 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만하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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