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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좋은 사회를 만드는 습관

입력
2017.07.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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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좋은 습관 갖느냐 성공의 관건

원전 논란 보며 안전불감증 여전 실감

불의의 사고 대비 갖춘 사회 만들어야

엊그제 일본에서 유명했던 한 의사가 세상을 떠났다. 도쿄 성누가국제병원의 히노하라 시게아키 명예원장이다. 105세 장수를 누린 그의 인생 모토는 ‘영원한 현역’이었다. 100세 넘어 환자를 보는 내과의였고 전쟁 체험 세대의 책임이라며 평화 강연 활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수업이나 저술ㆍ기고, TV 출연에도 적극적이었다. 건강하고 열정적인 삶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예방의학을 강조한 선구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노래했고 암, 당뇨, 고혈압, 심장병 같은 질병을 ‘성인병’이라 하지 말고 ‘습관병’으로 고쳐 부르자고 했다. 식습관, 생활 방식을 고치면 상당 부분 예방 가능한 병임을 이름으로 알려 주자는 것이었다. 1950년대 후반 성인병이라는 말을 지었던 일본 후생성은 히노하라의 주장이 있고 한참 뒤 성인병을 ‘생활습관병’으로 바꿔 부르게 된다.

히노하라가 어느 인터뷰에서 인용한 적이 있는 ‘습관’과 관련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다. “사람은 반복된 행동의 산물이다. 뛰어나다는 것은 한 번의 행동이 아니라 일종의 습관에 의한 것이다. 뛰어남은 훈련과 습관으로 얻는 기술이다. 우리는 덕이 있고 뛰어나서 올바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갖는 것이다.” 미국의 자기계발 멘토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백만불 짜리 습관’에서 습관이 한 사람의 생각과 느낌, 행동의 95%를 결정한다며 “성공 습관” 개발이 훌륭한 삶을 사는 비결이라고 했다. 빌 게이츠도 비슷한 말을 한다. “인생은 습관의 연속이고 어떤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나쁜 습관은 사람을 망치지만 좋은 습관은 사람을 훌륭하게 만든다.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사회도 어떤 습관을, 달리 말해 어떤 문화를 갖느냐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지금 찬반 갈등이 뜨거운 원전 문제를 보자. 가동했거나 가동 중인 440여기 중 치명적인 사고가 난 원전은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3곳의 6기이다. 다른 사고들과 비교하면 발생 확률이 높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사고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며 그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운전 중 발생하는 이런저런 작은 사고들, 땅 깊이 묻는 것 말고 해답을 찾지 못한 폐기물 처리까지 감안하면 이처럼 안전을 위협하는 에너지원을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여론을 모아 보자고 3개월간 신규 원전 건설 중지한 것을 두고 당장 원전 전면 폐쇄라도 한 것처럼 반대하고 나서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세월호 이후 ‘안전’ 구호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놓고도 한국 사회는 아직 그런 안전 중시 태도를 습관으로 만들지 못한 것 같다.

작고한 히노하라는 30대 중반에 도쿄 대공습을 겪었다. 소이탄에 다친 사람들이 넘쳐났으나 치료할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근무하던 성누가국제병원에서 새 병동 신축 계획이 거론되자 그는 재난 상황에 대비해 로비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로비와 병원 복도, 심지어 병원 예배당에까지 산소공급장치를 설치하자고 했다. 유사시 병실이 모자라도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과잉 투자”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제안이 채택돼 1992년 당시로서는 일본에서도 드문 시설을 갖춘 병동이 완공됐다. 그리고 3년 뒤 도쿄에서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중독된 시민들이 밀려들자 병원장이던 히노하라는 당일 외래환자 진료를 전면 중단하고 병동 전체를 활용해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일조했다. 모자랐던 과거에서 배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은 성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반대로 과거망각증은 사람을, 사회를 죽음으로 끌고 갈지도 모르는 질 나쁜 습관병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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