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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등록 : 2016.02.23 14:49

[이정모 칼럼] 뜻 깊은 작은 장례식

등록 : 2016.02.23 14:49

어미와 새끼 개가 등장한 짧은 비디오 클립 하나를 봤다. 새끼가 죽었다. 죽은 새끼를 입에 물고 우왕좌왕 하던 어미는 화단으로 들어가서 땅을 파고 거기에 새끼를 묻고서는 주둥이로 흙을 덮고 발로는 흙을 단단하게 다진다.

이 짧은 장면에서 새끼를 잃은 어미의 애통한 마음을 볼 수 있었다.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아렸다. 짐승도 이럴진대 사람이 가족을 잃었을 때 그 슬픔은 얼마나 크겠는가.

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부고를 자주 받는다. 친구 부친상 부고를 받고서 ‘아이쿠! 그 어른이 돌아가셨다니…. 이 답답한 가슴을 어이할꼬.’ 하기는커녕 ‘○○이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내가 그 친구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어야 할 텐테….’라는 마음을 품는 경우도 거의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단 한번도 슬퍼하거나 상을 당한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이는 ○○와 친했으니까 이번에 오겠군, 오랜만에 △△를 만날 수 있겠어’라는 기대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뻔뻔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문상 온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버이날 새벽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 황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황이 없어도 부고를 알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단 몇 번의 클릭으로 지인들에게 상을 당한 사실을 알릴 수 있었고, 아버지 핸드폰으로 아버지의 친구분들께도 쉽게 연락했다. 복잡한 장례절차는 교회의 도움을 받았고 병원장례식장-상조회사-화장터-추모공원은 시스템 안에서 훌륭하게 작동했다.

어버이날 저녁이었지만 친구들은 자기 부모님을 챙기는 대신 우리 아버지 빈소를 찾았다(고맙다. 친구들아). 어버이날 복잡한 도로사정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도착한 친구들은 형식적으로 문상을 하고 빈소 옆방에 마련된 식당에서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한다. 문상객이 뜸한 틈을 타서 친구들에게 가면 친구들은 역시 형식적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 평소에 지병이 있었는지를 묻는다(모든 문상객들은 같은 걸 묻는다. 나중에는 아예 벽에 그 내용을 써놓을까 고민했을 정도다). 간단한 대화가 오가고 상주가 새로운 손님을 맞기 위해 자리를 뜨면 친구들은 다시 왁지지껄 떠들고 마시면서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장례식장은 동창회장이고 향우회장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이 흥겨운 장례풍경이 참 좋다. 안주 내와라, 술상 새로 봐달라는 문상객의 성화에 상주들이 슬퍼할 틈이 없는 장례문화가 정말 좋다. 상주만 슬퍼하면 됐지 어떻게 모든 사람이 함께 슬퍼할 수 있겠는가. 한번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후배들에게 상주인 선배가 와서 “잔치 났다, 잔치 났어.”라고 핀잔을 주신 적이 있는데, 그의 얼굴도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빈소는 한편으로는 축제의 장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허세의 장이기도 하다. 빈소 안팎에 놓인 화환이 얼마나 많으며 누가 화환을 보냈는지를 살피게 된다. 장례식장은 돌아가신 고인이 아니라 상주의 위세를 나타내는 경연장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첫날 밤 늦게 빈소를 찾은 한 출판사 사장님은 빈소에 화환의 숫자가 너무 적다면서 내가 부고를 띄우지도 않은 다른 출판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화환 독촉을 하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아버지 상을 슬픔 속에서 치르는 동안에도 남은 어머니와 네 자식 그리고 며느리와 사위는 평소와 다름없이 화목을 유지했다. 하지만 수의와 관을 정할 때 잠깐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약간 거리가 있는 친척이 ‘체면이 있지 이 정도는 해야 한다, 네 아버지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수의가 그게 뭐냐’면서 참견을 했기 때문이다. 이때 상조회에서 도와주러 온 사람이 자신의 매출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자식들의 뜻이 옳다고 지지를 표하면서 정리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장례의식은 자신의 종교와 상관 없이 대체로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부모가 돌아가신 게 살아있는 자식의 불효 때문이라고 여기고, 효(孝)를 다하지 못한 것을 주변에 널리 알리고, 망인(亡人)에 대한 슬픔과 애통함을 여러 의식과 절차를 통해 표현하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장례마저 치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에서만 1년에 300여 무연고 시신이 발생한다. 무연고자의 시신은 별다른 예식 없이 곧바로 화장된다. 아무리 가족이 없는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장례는 치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올 1월 대한(大寒) 추위가 엄습했을 때도 돈의동 쪽방촌에서 무연고 노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 이를 안타까워한 돈의동 사랑의쉼터와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돈의동 사람의쉼터 지하 휴게실에 작지만 특별한 빈소를 차려 노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평소 고인과 이웃살이를 하며 정을 나눴던 주민들이 조용히 분향했다. 참 좋은 이웃이다.

한편에서는 과도하고 번잡스러운 장례문화가 계속되고 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허세를 떠는 게 무슨 덕이 되겠는가.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수록 효를 다한 것이라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우리 형제들이 될 수 있으면 절차를 간소화하고 비용을 아끼는 데 쉽게 합의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버지가 평소가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누구나 장례를 부담스러워한다. 장례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정도인 1,200만원으로 지나치게 많이 들고, 불필요하고 왜곡된 절차로 상주뿐만 아니라 문상객들에게도 부담이 되고 있다.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면 불효라고 여기고 거창한 장례식으로 상주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려는 풍토는 이제 그만 사라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뜻 깊은 작은 장례’를 위한 주민 운동을 벌이고 있는 서대문구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나는 자식에게 아예 간소한 장례절차를 정해줄 생각이다. 그래야 자식이 자유로울 것 같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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