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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생의 남은 절반이 자꾸만 늘어나요!

입력
2017.07.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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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십 몇 년 전, 내 나이 마흔엔 인생의 절반쯤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 때 돌아본 지나온 절반은 봄날 꿈처럼 아련했다. 40년 동안 나와 스쳤던 인연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이름만 맴도는 유치원 때 친구, 도시락을 같이 까먹던 여고 동창, 서툴던 첫사랑, 얼굴 붉히며 논쟁하던 회사 동료들… 그토록 짧은 만남, 짧은 하루들이 쌓여 어느새 어른이 되고 직업을 가지고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남들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때로 힘들고 때로 행복하고 슬프고 재미있는 인생이었다고 생각했다.

중간쯤이라고 여겨지는 나이에 서니 지나온 절반이 새삼 감사했고, 아직 살지 않은 절반이 두려웠다. 남은 날들은 부모님이나 학교 뒤로 숨을 수도 없는, 오롯한 스스로의 몫이라는 사실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그 시절 눈에 띄었던 광고가 있다.

NA) 나의 절반은 지쳐있고

나의 절반은 힘이 남았고,

나의 절반은 두려움에 떨고

나의 절반은 용기로 가득하다.

클라임 더 라이프(Climb the Life)

(K2_TVCM_2004_카피)

카피는 절반을 살았고 절반을 남겨둔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2004년 8월 전파를 탔던 스포츠 브랜드 K2의 TVCM이다. 광고는 화면 가득 눈 덮인 산과 그 산을 힘겹게 오르는 사람을 보여준다. 화면의 주인공은 얼음에 발을 박고 겨우 한 발자국 나갔다가 그 몇 배를 굴러 떨어진다. 깍지 못한 수염에 고드름을 달고서 칼벼랑을 아득히 올려다 보고, 다시 온몸으로 산을 오른다. 제발 오르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엎드려 비는 것 같은 모양새다. 어쩌면 인생은 정상이 어딘지 모르는 산을 오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흐른 2017년, 올해의 절반이 지났다. 절반이나 지난 것이기도 하고 절반이나 남은 것이기도 하다. 지난 6개월 무엇을 했던가… 지나간 반 년이 또 찰나처럼 느껴진다. 1월에서 6월까지 겨울 지나 여름이 되는 동안 나는 별 일 없이 그냥 살았다. 지난 과거를 오래 붙들고 있지 않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졸린 눈 비비고 매일 일터에 나갔고, 짬 내어 친구들을 만났다. 아이를 위해 밥을 차렸고, 집안의 먼지도 쓸고 닦았다. 물론 출근 시간 지옥철에 타거나 표시도 안 나는 집안 일 대신 속초나 제주도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다잡긴 했다. 그랬다고 해서 큰 불만은 없다. 나만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평범할 수 있는 하루의 일상이 큰 축복이고, 내일을 다시 활기차게 시작할 힘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TVCM과 같은 해 제작된 K2의 라디오 광고는 지금 나처럼 주어진 매일을,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에 바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NA) 나는 수서 사거리에 서있다.

왼쪽으로 가면 서울, 오른쪽으로 가면 속초.

나는 오른쪽으로 달리는 충동을 누르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지금 나는 소풍을 온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클라임 더 라이프

(K2_라디오CM_2004_카피)

유엔이 ‘호모 헌드레드(100) 시대’를 선포한 때가 2009년인데, 멀지 않아 120세 시대가 열린다는 뉴스가 들린다. 그렇다면, 인생의 반을 살았다고 생각한 2004년 후로 십 수 년을 더 살았는데 여전히 나는 절반도 못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큰일이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남은 절반의 생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까? 90살, 100살의 나는 지금의 나와 어떻게 다를까? 잘 모르겠다. 답을 모르는 고민은 오래 하지 말자. 대신 올해 남은 절반을 어떻게 보람차고 유쾌하게 보낼지나 생각해 봐야겠다. 내 인생의 남은 절반을 버틸 힘과 용기는 올해 남은 절반을 행복하게 채우면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리라 믿는다.

(K2_TVCM_2004_스토리보드)

http://k2blog.co.kr/120046393722 (K2_TVCM_2004_링크)http://k2blog.co.kr/120046393722

(K2_라디오CM_2004_링크)

정이숙 카피라이터ㆍ(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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