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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할 수 있다”라는 말

입력
2016.08.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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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열등생으로 보냈다. 1, 2학년 내내 반 평균 점수를 끌어내리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공부하고 영원히 담을 쌓고 싶은 내게도 어김없이 고3이라는 고행의 시간이 찾아왔다. 반 편성과 함께 새 담임선생님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나는 1년 내내 선생님과 맺게 될 악연을 걱정하며 고개를 숙이고 상담실 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한눈에 보기에도 끔찍한 그동안의 내 성적표를 펼쳤다. 불호령 외에 더 기대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너는, 국내 최고의 대학을 갈 수 있는 머리를 갖고 있다. 할 수 있는데 네가 안 하고 있단 말이다. 한 번 해봐.” 역시 국어 선생님답게 극한의 과장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시는 거였다. 나는 절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 지능지수는 내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그 ‘할 수 있는데’라는 말이 공부하는 중에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할 수 있다’라고 몇 번 외쳐보기도 했지만, 그 말은 곧 ‘할 수 있을까’로 변해버리곤 했다. 마음이 안 따라와도 억지로 ‘할 수 있다’를 외쳐보기로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경험과 이성적 판단으로 뭉친 마음이 과장과 허구의 외침에 견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나 똑같은 노력을 하기 때문에 순위가 그대로 간다는 그 1년 동안에 내 성적은 매월 향상되었다.

입시가 끝나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친구들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의 상담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속으로 ‘나는 그래도 선생님이 특별히 인정한 머리를 갖고 있단 말이다’라는 자부심을 품고서 저마다의 가능성에 도전했던 것이다. 긍정의 결과는 ‘할 수 있다’라고 믿었던 사람과, 믿어지지는 않지만 억지로라도 그렇게 외쳤던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내 인생에서 말의 힘을 처음 경험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 뒤로 힘든 과제를 앞에 두거나 더 큰 목표가 생길 때면 “할 수 있다, 해보자” 부터 외치는 게 버릇이 되었다.

리우 올림픽 펜싱 경기에서 박상영 선수의 외침이 우리 국민에게 큰 힘을 주고 있다. 몸이 무너지면 정신이 일으켜 세우고, 정신이 흐려지면 한마디 말이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행동보다 마음먹기가 쉽고, 마음먹기보다 말하기가 쉽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말했다. “만약 당신 앞에 감당하기 힘든 과제가 놓여있다면, 가장 쉬운 것부터 해보세요. 그러다 보면 그 과제가 힘든 게 아니란 걸 알게 될 겁니다.” 포드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행동하기도 마음먹기도 어려울 때 우선 긍정의 말부터 선포해야 한다.

사실 마음과 말은 서로 쏙 빼닮았다. 마음은 속에 머무는 말, 말은 밖으로 나온 생각이다. 그렇기에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이고 결국 긍정의 결과가 생겨난다. 말은 몸을 만들고 결국 인생을 만든다. 온갖 통신수단과 SNS 등으로 인해 말이 범람하는 세상을 살고 있는 지금, 어떤 말을 가까이하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불행의 언어를 많이 듣고 그것에 마음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빛나는 시나 뜨거운 소설을 읽으면 그 말들이 우리 속에서 빛나고 인생을 뜨겁게 한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강연은 강연자의 동력이 그대로 청중에게 전달되어 연쇄 폭발한다. 누구나 마음의 동력이 필요하다. 시도 때도 없이 공짜로, 또 무한대로 쓸 수 있는 최고의 연료는 바로 긍정의 말이다.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어쩌면 너무 흔해서 외면받는지 모른다. 꿈을 이루라고 인생이 가장 좋은 처방을 내려줬는데도 우리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외치기만 하면 되는 이 쉬운 것을! 만나는 사람마다 말해주겠다. “넌 할 수 있어.”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다’ 신드롬이 온 나라에 퍼지기를 소원한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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