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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헤롯의 무덤(5.7)

입력
2018.05.07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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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1세가 묻힌 것으로 알려진 유대 사막의 궁전요새 헤로디움. alzakera.eu
헤롯1세가 묻힌 것으로 알려진 유대 사막의 궁전요새 헤로디움. alzakera.eu

헤롯(Herod) 1세는 옛 로마 식민지 유대를 34년간 통치(B.C 37년~B.C 3년)한 왕으로, 신약성서가 전하는 바 아기 예수와의 악연으로 유명하다. ‘유대의 왕’ 예수가 탄생했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출생지 예루살렘의 2살 이하 아이들을 모조리 살해했지만 요셉의 꿈에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를 피신시키게 했다는 이야기. 구약과 달리 신약의 역사적 근친성에 수긍하는 성서 학자들 중에도 헤롯의 영아 집단살해 사실을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이들, 적어도 헤롯 2세이거나 3세의 소행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이성적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지만 저 이야기는 여름성경학교의 단골 레퍼토리로 회자되며, 헤롯은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돼왔다.

헤롯이 두 번째 부인과 세 아들을 외도와 반역 등 혐의로 처형한 이야기, 심지어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헤롯의 아들보다 그의 돼지가 되는 게 낫다”고 했다는 이야기, 숨지기 직전 유대 명망가들을 모조리 잡아들인 뒤 자신이 숨지면 그들을 전부 처형함으로써 애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정 로마의 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쓴 ‘유대고대사’(A.D 95년 출간)가 전하는 이야기지만, 내용이 다소 창작됐다는 게 사학ㆍ신학계의 정설이고 보면, 일부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헤롯은 다수의 신전과 궁전, 경기장, 바닥 난방시설을 갖춘 여러 개의 목욕탕 등 로마 건축술의 정수를 구현한 빼어난 건축물들을 지었다. 초보적 형태의 콘크리트를 활용한 거대한 부두와 방파제(카이사레아 항구), 상하수 시설을 갖춘 신전과 궁전, 예루살렘의 웅장한 성전과 예리코의 겨울궁전, 마사다의 여름 궁전, 그리고 사막에 건설한 궁전 요새 헤로디움. 요세푸스는 그가 화려한 금관과 왕홀을 쥔 채 헤로디움에 묻혔다고 기록했다.

그의 무덤을 찾는 일은 19세기 중반 이래 고고ㆍ성서학계의 큰 숙제 중 하나였다. 히브리 대학 에후드 네쩌르 교수가 2007년 5월 7일, 헤로디움 중턱에서 헤롯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시설과 석관을 발견했다고 발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석관 문양ㆍ장식 등이 예사롭지 않다는 게 근거였지만, 헤롯의 이름이나 왕관, 왕홀 등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견도 만만찮다. 토목의 화신인 그가 지은 무덤으로 보기에는 옹색(10X10m)하고, 전실도 협소하고, 대리석이 아닌 석회암을 썼고, 등등···. 고고학계는 그럼 누구의 무덤이냐는 또 하나의 숙제만 안게 된 건지도 모른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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