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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파닥거리자 꼬리 문 사건들... 암탉은 어떻게 됐을까

입력
2016.03.1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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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왜 길을 건넜을까’란 서양의 오래된 농담에는 어떤 인과응보의 도돌이표가 숨어 있을까. 문학과지성사 제공
‘닭은 왜 길을 건넜을까’란 서양의 오래된 농담에는 어떤 인과응보의 도돌이표가 숨어 있을까. 문학과지성사 제공

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음ㆍ김서정 옮김ㆍ데이비드 맥컬레이 그림

문학과지성사 발행ㆍ32쪽ㆍ1만원

아침에 작업실이 있는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로 들어갈 때, 운 좋으면 넋 놓고 바라볼 만한 장면을 만나곤 한다. 이웃의 베트남 엄마가 아이 둘을 건사하는 모습이다. 막 ‘원영이 사건’의 절망적인 뉴스를 접한 채 맞닥뜨린 어제 아침의 풍경은 아수라에서 연꽃을 보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중학생 체구의 이 엄마가 여느 때처럼 올망졸망 어린 아이 둘을 양손에 나눠 잡고 종종걸음 치는 참인데, 갑자기 50미터 저쪽 큰 길에서 거대한 이삿짐센터 트럭이며 크레인이 들어온다. 결코 위협을 느낄 거리는 아니건만 잠깐이라도 손을 놓치면 재게 달아나는 것이 아이들이니, 엄마는 곧바로 걸음을 멈춘다. 한 팔에 하나씩, 두 아이를 안는다. 셋이 하나가 되어 건너편 안전지대를 향해 다시 장렬하게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림책 ‘암탉은 왜 길을 건넜을까?’의 첫 장면에도 장렬하게 파드닥거리며 길을 건너는 암탉이 등장하지만 ‘순정한 모성’과는 관련 없다. 서양의 오래된 농담 ‘닭은 왜 길을 건넜을까?’에 대한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대답이 시작된다. 이 암탉이 파드닥거리는 바람에 근처를 지나던 젖소 떼가 흥분해 낡은 다리를 향해 내달린다. 젖소 떼며 무너지는 다리가 마침 지나가던 기차를 덮치고, 그 바람에 붙들려가던 도둑이 달아나면서 장물 자루가 찢겨 금시계가 떨어지고, 까치가 물어 올린 금시계는 인근 주택의 옥외 물통에 떨어져 파이프를 막는다. 몸을 씻던 아줌마가 무슨 일인가 알아내려고 옥외 물통을 향해 사다리를 오르고, 다리 쪽에서 나는 연기에 놀라 소방서에 신고한다. 급출동하려던 소방차 사다리에 전깃줄이 걸려 끊어지고 아이스크림 회사가 정전 사태를 맞는다. 아이스크림 바다에 잠긴 도로에서 앤더슨 아줌마가 발이 묶이는 바람에 말썽쟁이 쌍둥이들이 온갖 금지된 실험을 하고 놀다가 폭발 소동이 벌어지고…. 인과와 응보의 우여곡절은 축하파티를 벌이는 식당에서 닭고기 주문을 받은 요리사가 식칼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암탉이 장렬하게 길을 건너는 마지막 장면에 이른다. 첫 장면과 정확히 겹치며 인과응보의 도돌이표 노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연민하고 배려하는 ‘순정한 모성’을 상실한 사회는 도돌이표 응보를 받기 마련이다. 아침 뉴스에서 아동학대라는 잔혹한 화제를 접하는 이 일상이 응보의 시작일지 모른다.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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