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아프리카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해 당초 아시아 지역 개발이 창설 목적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까지 끌어들였다. AIIB를 내세워 각종 인프라 건설과 부채 탕감을 통해 아프리카 경제를 예속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57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이슬람개발은행(IDB)의 반다르 하자르 총재는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AIIB와 협력해 많은 사업에 융자를 할 계획”이라며 “약 6억5,000만명이 전기도 없이 지내는 아프리카에 자금을 대려면 연간 약 1,500억달러(약 161조원)가 필요한 만큼 두 조직 간 협력은 아프리카의 개발금융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재 IDB와 AIIB의 자본금은 각각 1,500억달러, 1,000억달러(약 107조원)다.
표면상 AIIB와 IDB의 협력은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AIIB의 80여개 회원국 중 상당수가 IDB 회원국이기도 하고, 아프리카 국가들에 개발금융을 지원해온 IDB로서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을 배경으로 둔 AIIB와의 협력을 통해 정치ㆍ외교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 AIIB 역시 IDB와의 협력사업으로 대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국제적인 활동 공간을 넓힐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 전략이 상생모델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과거 사회주의권 동맹을 지원하는데 주력했던 중국의 아프리카 정책 기조는 이제 자원 확보를 위한 경제협력 강화로 바뀌었다. 중국은 도로ㆍ철도ㆍ통신 등 각종 인프라 구축, 중국 기업의 현지 공장 건설을 통한 고용 창출 등을 강조하지만, 일방적 자원수탈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구상으로 이 같은 정책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 간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공사 명목으로 대규모 차관을 제공한 뒤 실제 공사는 중국 기업과 중국인 노동자들이 맡는 경우가 많고 차관 일부를 탕감해주며 반발을 무마하는 일이 다반사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 기업은 1만개가 넘고 2004년 10억달러(약 1조700억원)였던 총 투자금은 지난해에 490억달러(약 52조4,300억원)까지 늘었다. 아프리카 전역에 깔린 통신망의 90%가 중국 업체들의 손을 거쳤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이 중국개발은행(CDB) 등을 통해 대규모 개발금융을 제공해왔으면서도 AIIB를 추가로 끌어들인 데에는 정치ㆍ외교적 노림수도 있다. 영국과 호주 등 일부 서방 주요국의 참여를 끌어낸 데 이어 동남아시아ㆍ중앙아시아ㆍ동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 세계은행(WB) 중심 금융질서에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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