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환경영향평가에서 어류 전문가가 포유류를 조사하는 등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9일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원주지방환경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환경영향평가서 등에 따르면 2014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이뤄진 현장조사에서 12차례에 걸쳐 비전문가의 조사가 이뤄졌다. 어류 전문가인 A씨가 포유류를 조사하고, 식물 조사에 참여한 B씨가 육상동물을 조사하는 식이다. 또 조사 일시와 방법, 내용 등을 기록한 현지조사표가 누락돼 실제 조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사례도 최소 5차례나 있었다. 이 때문에 이달 2일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평가서에 제시된 각종 증빙자료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원자료(Raw data)를 제시하지 않아 사실상 조사를 안 했다는 의혹 제기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케이블카 사업자인 양양군으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현장조사를 수행한 M업체 관계자는 “모두 실제로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비전문가의 조사에 대해서는 “박사급 조사자는 아니지만 동물분류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며, 현지조사표 누락 등에 대해서는 보완토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멸종위기종이 추가로 발견됐음에도 환경영향평가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양양군은 지난해 8월 국립공원위원회로부터 산양에 대한 추가조사 및 멸종위기종 보호대책 수립 등 7가지 과제 수행을 전제로 조건부 케이블카 사업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사업부지에 카메라 70대를 설치해 조사한 결과 산양 외에 담비, 삵 등 멸종위기종의 서식이 확인됐다. 6월에 나온 ‘산양 추가조사 및 멸종위기종 보호대책 수립용역’ 중간보고서에는 이 멸종위기종들의 발견위치와 빈도까지 구체적으로 지도화돼 있다. 그러나 7월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발견 여부만 짧게 언급돼 케이블카 설치시 미칠 영향을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황인철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상황실장은 “멸종위기종의 서식 실태를 은폐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왜곡한 뒤 사업을 강행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서 등에 관한 협의업무 처리규정은 ▦환경현황이 사실과 크게 다르거나 ▦조작되거나 잘못된 기초자료, 잘못된 예측기법을 사용해 환경영향예측을 축소한 경우 평가서를 반려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착공이 미뤄지고 환경영향평가서를 새로 작성해야 한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등 시민단체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평가서를 반려하지 않는다면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형사 고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