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를 활짝 펴고 “제비 몰러 나간다””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를 외쳤던 명창 박동진 옹과 병신춤으로 유명한 1인 창무극의 선구자 공옥진 여사가 2003년 7월 8일과 2012년 7월 9일, 9년의 터울을 두고 국악계를 떠났다. 향년 87세와 81세.
박 명창은 특유의 입담과 해학으로 80세가 넘도록 현역으로 활동하며 국악 대중화에 앞장섰고 ‘토막소리’ 위주이던 판소리계에 ‘완창’이라는 새 바람을 일으킨 한국 판소리의 대들보였다. 1930년 대전중학교 시절, 당대의 명창이던 이화중선과 이동백 등이 출연한 공연을 본 후 ‘눈깔이 홀랑 뒤집히는(본인 표현)’ 희열을 접하고 판소리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하이라이트만 소리내던 당시 현실에서 68년, 그는 쉰이 넘은 나이로 장장 5시간 30분에 걸쳐 ‘흥보가’ 완창을 소화해냈고 이후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춘향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을 차례로 완창해 후배들을 놀라게 했다. 1998년 후학 양성을 위해 고향 공주에 세운 판소리전수관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평생 소리꾼의 삶을 마감했다.
공옥진 여사의 삶 또한 이에 못지않다. 1941년 판소리 명장 공대일 선생의 둘째 딸로 태어난 그는 일곱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무용가 최승희에게 춤을 배웠고 45년 조선창극단에 들어오면서 평생을 춤과 함께 생활했다. 전통무용에 해학적인 동물 춤을 접목한 ‘1인 창무극’과 몸을 비비 꼬는‘곱사춤’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독보적인 영역이었다. 7,80년대 서울 원서동 공간사랑에서의 1인극은 장안의 커다란 화제였다.
98년에 이어 2004년에 다시 찾아온 뇌졸중은 그를 무대에서 끌어내렸고 2010년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국립극장에 오른 ‘한국의 명인명무전’이 마지막 무대였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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