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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준 기자

등록 : 2018.03.15 04:40
수정 : 2018.03.15 09:07

[딥 DEEP 딥] “잔다르크인 줄 알아?” ‘미투’ 후 동료음악인이 한 말에...

문화계 ‘미투’ 폭로 전에도 폭로 후에도... 눈물 짓는 피해자들

등록 : 2018.03.15 04:40
수정 : 2018.03.15 09:07

그래픽=송정근 기자

“후배가 울면서 성추행 전화해 악몽 떠올라”

‘당신은 잔다르크가 아냐.’ 가수 A씨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미투(#Me Too)’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건 당신 만의 생각’이란 메시지를 받았다.발신자는 알고 지내던 후배 남성 음악인. A씨가 드라마 ‘수사반장’ 주제곡 타악 연주로 유명한 드러머 류복성의 성추행을 폭로한 뒤 당한 비아냥이었다.

충격을 받은 A씨는 미투 후 자신의 평판이 궁금해졌다. 후배에 전화를 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니?”라고 물었더니 “무서워하죠”란 답이 돌아왔다. “업계를 떠날 각오로 미투 운동에 동참했지만” ‘쟤 뮤지션 (성추행) 폭로 했잖아’ ‘미투로 유명세 얻으려 발악하네’란 얘기가 들릴 땐 억울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주위의 차가운 시선은 약과다. A씨는 지난 9일 인터뷰가 끝난 직후 문자를 보내왔다. ‘모텔에 절 데려간 (또 다른) 가해자가 저를 고소했다고 연락이 왔네요.’ 국내 형법은 거짓뿐 아니라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도 죄로 인정한다. 딸을 유아원에 보낸 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A씨는 “후배가 성추행을 당해 너무 수치스럽다며 울면서 전화해 미투에 나섰다”고 했다. 신인 때 같은 음악인에게 당했던 악몽이 떠올라서다.

악습을 끊고자 냈던 용기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와 A씨의 가슴에 꽂혔다. 명예훼손죄가 그가 지목한 가해자의 무기가 됐다. 피아니스트 B씨도 한 드러머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뒤 명예훼손으로 최근 고소당했다. B씨가 미투 후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피소 소식 보다 “너 성인인데 왜 거절을 못 해”란 얘기를 들을 때였다. B씨는 “옛날부터 ‘꽃뱀’이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데다 왜 거절을 못 했냐는 비난까지 들어야 해 하루하루가 버겁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B씨는 자학까지 하게 됐다. 대학원에 다니는 B씨는 요즘 사람을 만나는 게 제일 힘들다.

증거 확보 위해… 2차 피해도 감수

문화계 성추행 피해자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자신들의 미투가 불륜이나 성추문으로 치부될 때였다. 김기덕 감독이나 이윤택 연극연출가처럼 각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지 않은 이들이 가해자로 지목될 때 의심은 쏟아진다. 이들이 무슨 힘이 있어 권력을 앞세워 여성을 제압했겠느냐는 미투 음모론이 나올 때 피해자들은 절망했다. 신인들에게는 누군가가 업계에 터를 잡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A씨가 류복성의 추행을 견뎠던 건 신인 가수로서 무대에 설 기회를 아예 잃을까 봐 우려돼서였다. 류복성의 추행을 공론화해 공연팀의 분위기를 망치면 배척 당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컸다.

성추행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미투 폭로자들의 노력은 처절하다. 유명 드러머 남궁연에게 ‘연습실에서 옷을 벗고 가슴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폭로한 한 소리꾼은 미투 후 큰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며 남궁연 최측근과의 전화통화까지 했다. 성범죄는 은밀하게 이뤄져 입증이 어렵다. 성폭행은 피해자가 협박 당한 사실 등을 직접 입증해야 법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국회에서 명예훼손죄 처벌 대상에서 성폭력 피해 폭로를 제외하는 법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는 이유다.

예술을 빙자한 성추행의 노골성

앨범을 내기 위해 녹음을 부탁하러 갔더니 “좋은 녹음이 되려면 연주뿐 아니라 몸도 하나가 되어야 잘 나온다”(피아니스트 B씨)고 해 정말 당황했지만, 농담인 척 받아들여야 했다. “발성을 위해서라며 이윤택 연출가가 내 뒤에서 양손으로 명치부터 가슴을 둥그렇게 문지를 땐”(연극 배우 C씨) 끔찍했다. 오디션을 위해 김기덕 감독을 한 카페에서 만났더니 “너의 몸을 확인할 수 있느냐고 해”(배우 D씨) 업계를 떠났다.

문화계 미투는 다른 분야의 피해 사례와 결이 다르다. 피해자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위계에서 비롯된 성추행이란 점은 다른 분야와 비슷하지만, 문화계에선 성추행 과정에 예술이 교묘하게 섞인다. 성폭력은 발성이나 연기 지도 등의 명목으로 포장됐다. 때론 더 나은 창작물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까지 미화됐다. 예술의 팔레트가 되어야 할 몸은 예술이란 이름으로 더럽혀졌다.

성추행이 ‘예술을 위해’란 핑계로 저질러지다 보니 수위는 높았고, 힘을 지닌 사람의 요구는 노골적이었다. 보고서 잘 쓰는 법을 미끼로 부하직원을 성추행하려는 상사가 있을 수 있을까. 다른 분야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문화계 성추행이 빈번하게 벌어졌고, 미투 운동으로 추악함이 상세히 폭로됐다.

‘성개방=예술’이란 최면… 성폭력적 랩까지

이윤택 연출가는 자신이 이끌던 극단 연희단거리패에서 자행된 성추행이 “18년 가까이 진행된 관행”이라고 했다. 한 곳에서 오랫동안 성추행이 이뤄졌다는 건 집단적인 최면 없이 불가능하다. ‘금기를 뛰어넘는 성개방이 예술’이라는 착각이 집단 최면을 불렀다. “1960~70년대 성해방 운동을 비판 없이 수용”(이택광 경희대 교수)한 결과다.

‘성개방=예술’이란 신화는 여성 폭력이란 부작용을 낳았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2001)를 비롯해 ‘브이아이피’(2017)까지 영화계에선 여성 혐오 담론이 끊이지 않았다. Mnet ‘쇼미더머니’ 출신 래퍼 블랙넛은 “솔직히 난 (가수) 키디비 사진보고 X쳐봤지”(‘인디고 차일드’ㆍ2016), “이번엔 키디비 아냐 줘도 안 X먹어”(‘투 리얼’ㆍ2017) 등의 성폭력에 가까운 랩을 쏟아낸다. “너넨 이런 말 못 하지 늘 숨기려고만 하지”(‘인디고 차일드)라며 과시하는 듯한 대목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여성을 향한 무자비한 랩이 저항의 예술이라는, 그의 기괴한 믿음이 엿보여서다. 성폭력적 내용이 담긴 이 곡들은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성폭력에 업계가 무감각하다는 뜻이다. 이 곡들이 공개된 뒤 키디비는 대인기피증이 심해졌고, 천주교성폭력상담소의 도움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가해자 감싸기… 영화계 종사 여성 10명 중 8명이 성평등 비관

여성을 향해 성폭력적 언행을 한 가해자를 감싸고 도는 업계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이윤택 연출가의 숱한 성추행을 묵인하며 공연을 제작했고, 케이블채널 tvN은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들”이란 여성 혐오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장동민을 아무런 제재 없이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시켰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를 찍을 때마다 배우와 성폭력 문제로 갈등을 빚었음에도 그와 함께했던 스태프들은 권력 앞에 침묵했다.

“수많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했던 이윤택 연출가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찬조 연설을 했다.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니다. 탁현민 행정관 등이 여전히 사회 권력 계층인 현실이 더해져서 이 연출가 같은 남성이 여성을 손쉽게 착취하고 존경을 받는 일이 가능했다”(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감독).

성폭력적 언행을 한 가해자대신 현장을 떠나야 하는 건 늘 피해자였다. 배우 문소리는 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영화계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토론회에서 “우리가 모두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거나 방관자였거나 암묵적 동조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가족이 상처 받을까 걱정하면서도 업계 변화를 위해 여러 음악인의 성추행을 폭로한 가수 A씨는 미투 후 무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남성 음악인들은 피해 볼 일이 없잖아요. 여태 가해자들의 성추문을 듣고 성희롱을 보면서도 그들과 함께 해왔고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며 연주 혹은 노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을테니까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죠. 미투 후 과연 남성들이 여성들과 함께 가해자 처벌을 위한 공동 연대에 나설까요?”

영화진흥위원회, 여성영화인모임이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감독ㆍ배우ㆍ스태프 등 영화계 종사자 749명을 대상으로 벌인 성폭력ㆍ성희롱 실태 조사에서 여성 응답자의 86.5%는 미투 후에도 성평등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딥 DEEP 딥’은 문화계 현상과 이슈를 깊게 들여다 봅니다. 매주 목요일 심도 있는 분석과 다채로운 시각이 담긴 문화계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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