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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등록 : 2018.04.10 15:19
수정 : 2018.04.10 15:20

[이종필의 제5원소] 호킹의 유산

등록 : 2018.04.10 15:19
수정 : 2018.04.10 15:20

금세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스티븐 호킹이 지난달 14일 타계했다. 그의 유해는 올 가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뉴턴과 다윈 옆에 나란히 안치된다고 한다.

신체의 한계를 극복한 과학자, 그 유명한 ‘시간의 역사’를 쓴 저자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과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호킹은 모든 것이 모순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가장 불편한 신체와 가장 명석한 두뇌가 우선 그렇다. 공전의 히트작인 ‘시간의 역사’는 팔린 부수 대비 완독한 사람의 비율이 가장 낮은 책의 대명사이다. 호킹이 초창기에 연구했던 특이점 정리도 모순적이다. 호킹의 가장 대표적 업적은 이름부터 ‘정보모순(information paradox)’이다.

정보모순은 블랙홀에서 일어나는 모순적 현상이다. 블랙홀은 중력이 강력해서 빛조차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경계면, 즉 사건의 지평선을 가진 천체이다. 사건의 지평선을 건너 블랙홀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따라서 블랙홀은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이기만 할 뿐 그 내부의 무언가를 다시 뱉어내지 않는다. 호킹은 70년대 중반 블랙홀에 대한 이런 통념을 뒤집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호킹에 따르면 블랙홀은 입자를 방출한다! 이를 호킹 복사라 부른다. 블랙홀은 호킹 복사를 하면서 에너지를 잃어버리고 그 결과 크기가 점점 작아져 마침내 증발해 버린다. 호킹 복사는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 양자역학을 적용해 얻은 결과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순간적으로 입자와 반입자 쌍이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 만약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만들어진 반입자가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고 그 쌍이 되는 입자가 블랙홀 밖으로 나온다면 결국 블랙홀이 입자를 뱉어내면서 에너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블랙홀이 주변의 물체를 집어삼키면 그 물체의 정보는 블랙홀 안에 어떤 형태로든 보관돼 있을 것이다. 블랙홀 밖으로는 아무 것도 빠져나올 수 없으므로 그 정보는 블랙홀 안에 갇혀 있게 된다. 그런데 호킹에 따르면 블랙홀은 호킹 복사를 하면서 결국 증발한다. 그렇다면 블랙홀이 증발하면서 그 속의 정보도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닐까? 이는 양자역학의 기본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양자역학에서는 결코 정보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보모순이다. 블랙홀은 현대적인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기술되는 천제이다. 호킹은 여기에 양자역학을 적용해 모순을 이끌어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현대물리학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그 두 기둥이 블랙홀에서 만나 근본적인 모순을 일으킨다는 것이 호킹의 주장이다. 정보모순을 둘러싼 논쟁은 30년 넘게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블랙홀과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음은 물론이다. 오랜 논쟁 끝에 2000년대 중반, 호킹은 블랙홀에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꾸며 대논쟁에서의 패배를 선언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논쟁의 진정한 승자는 호킹이었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해답을 찾는 것만큼이나 그 해답이 있게끔 먼저 문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블랙홀에서의 정보모순은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호킹의 타계 소식을 듣고서 왜 우리나라에서는 저런 과학자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호킹의 삶이 모순으로 점철돼 있다는 점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자면 한국은 모순이 드러나는 것을 못 참는 사회이다. 오랫동안 오로지 정답만을 가르치고 강요해 왔던 터라 모순의 존재 자체를 견디지 못한다. 툭하면 국론분열이 우려된다며 사람들의 입을 막아 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이미 정해진 정답의 절대적 기준은 이른바 ‘먹고사니즘’이다. 무엇을 연구하든 먹고 사는 문제와의 직접적 연관성만 따지는 우리 풍토에서는 정보모순을 둘러싼 논쟁이 왜 그리 중요한지 제대로 평가 받기도, 이런 논쟁이 진행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마 호킹이 한국에서 살았다면 그래서 정보모순이 지금 먹고 사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블랙홀의 산업유발효과는 얼마나 되는지 그런 질문에 시달렸을 게 분명하다.

과학자들이 정보모순에 열광했던 이유는 이 모순을 드러내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큰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모순은 북한이라는 존재이다. 북한은 우리와 전쟁을 치른 당사자이면서 지금도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적국이지만 동시에 공존과 통일의 대상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북한에 대한 한국사회의 정답은 멸공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순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아직도 낡아빠진 정답만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모순의 해결이 아니라 모순의 심화이다. 모순은 숨긴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적폐청산이나 미투 운동은 지금까지 숨겨졌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만천하에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호킹만큼이나 위대한 인물들이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셈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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