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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찐빵에 앙꼬를 넣으려면

입력
2018.02.21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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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회와 협의할 헌법개정안 마련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회와 협의할 헌법개정안 마련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청와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과 마주앉았다. ‘국방개혁 2.0’을 보고하는 자리였다. 병력 감축, 3축 체계 등 낯익은 관심사가 먼저 화제에 올랐다. 하지만 분위기를 달군 쟁점은 따로 있었다. 문 대통령은 유사시 국군이 평양으로 진격할 때 중국군이 개입하면 어떻게 대응할지를 물었다고 한다. 일부 참석자는 기존 대량응징보복 외에 송 장관이 의욕적으로 추가한 ‘플러스 알파’ 대책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공세적 기동으로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휘부를 신속히 도려낸다지만 “그러면 전쟁을 너무 쉽게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왔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청와대의 일격이었다. 장밋빛 청사진만 읊으려던 국방부는 허둥댔고 이날 보고는 열띤 토론으로 흘렀다. 그렇게 40여분간 머리를 맞댔지만 이틀 후 국방부가 국회에 국방개혁 초안을 보고할 때 이런 민감한 내용은 모두 빠졌다. 국회 관계자는 “국방개혁안이 너무 밋밋해 안타까울 지경”이라고 혀를 찼다. 과거 수 차례 실패한 국방개혁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할 국회가 과연 전폭적인 성원을 보낼지 미심쩍은 대목이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국방개혁의 묘수를 짜내던 그 즈음, 국회에서는 뜬금없는 찐빵 논쟁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의원총회를 거쳐 헌법개정의 방향을 제시하자 자유한국당은 “권력구조 개편이 빠진 개헌은 앙꼬(팥소의 일본말) 없는 찐빵”이라며 물고 늘어졌고, 민주당은 다시 “앙꼬도 없고 찐빵도 없는 비난에만 몰두한다”고 맞받아쳤다. 서로 찐빵을 팔겠다고 달려들면서도 정치의 본령인 협상은커녕 정작 중요한 앙꼬를 흥정하듯 상대에게 떠밀고 있으니, 대체 어느 가게에서 물건을 사라는 건지 헛갈릴 지경이다.

보다 못한 청와대가 찐빵 감별사로 나섰다. 여야에 곧이 맡겼다가는 손님이 다 떨어져 가게 문을 닫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청와대가 3월에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며 야당을 윽박지르자 수세에 몰린 한국당은 뒤집기 한판을 노리며 한발 물러서 벼르는 상태다.

국방개혁과 개헌은 여러모로 닮아있다. 나라의 틀을 바꾸겠다고 깃발을 들었다가 거센 비바람에 물러서곤 했다. 물론 국민 상당수는 필요성에 공감한다. 그렇다고 딱히 큰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건 아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정작 내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정권에서 반짝 관심을 끌면서 여론이 쏠렸다가 번번이 뇌리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숱하게 지켜봤다. 대의명분을 앞세우다 뒷심이 부족했던 탓이다. 국도 대로변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찐빵이 먹음직스러워 한입 베어 물었다가 속이 휑한 밍밍한 맛에 발길을 돌리는 찜찜함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간만에 맛난 찐빵을 만들자는데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다만 밀가루가 손에 덕지덕지 늘어붙고 바닥이 너저분해지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반죽을 제대로 치대고 숙성을 거쳐야 깊은 맛이 나는 법이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강조하면서도 혹 트집이 잡힐세라 분권형 대통령제는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지방 분권을 마치 제왕적 대통령제의 전리품인양 억지주장을 펴며 공박하는 옹색한 수 싸움 또한 개헌에 대한 냉소만 키울 뿐이다. 재료를 잔뜩 쟁여놓고서도 앙꼬를 찐빵에 넣지 못하고 공장에서 뚝딱 찍어내는 한낱 그럴싸한 포장지에만 현혹돼 있으니 어느 손님이 선뜻 지갑을 열지 의문이다. 치열한 토론은 온데간데없고 윗선의 신념을 주입하는 것으로 비치는 국방개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가 꺼지면 남북관계와 한미 군사훈련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기세다. 더구나 지방선거의 진검 승부가 코 앞인 상황에서 한가하게 빵집 타령을 할 때가 아니다. 개헌과 국방개혁이 한반도 정세에 휩쓸려 또다시 뒷전으로 밀릴지, 아니면 앙꼬의 풍미가 가득한 찐빵에 담겨 국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을지 두고 볼 일이다.

김광수 정치부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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