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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사회주의로의 회귀

입력
2015.10.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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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파 아웃사이더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에 오르며 영국 지배층을 놀라게 했다. 코빈의 놀라운 점은 일부 주장처럼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공개 행사에서 영국 국가를 부를지 여부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코빈 표 좌익 사상이 놀라운 건 그가 매우 반동적이라는 점이다.

코빈은 구식 사회주의자다. 부자들에게서 돈을 뽑아내고 싶어하고 운송과 수도ㆍ전기ㆍ가스 같은 공공분야를 정부 통제 아래 두고 싶어한다. 계급전쟁에 대한 그의 수사학은 주류 사회민주주의와 완전한 단절을 시사한다.

전후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늘 자본주의와 타협했다. 좌익 사상, 특히 영국에서 좌익 사상은 다른 어떤 정치적 신념보다 기독교의 도덕적 전통(마르크스보다 감리교)에 빚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첫 영국 총리였던 클레멘트 애틀리 같은 노동당 지도자들은 시장 경제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노동 계층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시장을 규제하고 싶어했다. 냉전 시기 동안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 대신 서유럽의 평등주의를 펼칠 수 있는 대안이었다. 애틀리 자신은 격렬한 반공주의자였다.

노동당 전당대회에서는 사회주의의 옛 상징에 입에 발린 찬사가 쏟아졌다. 당 지도자들은 눈물 어린 향수에 빠져 인터내셔널가(프랑스에서 작곡된 국제사회주의자 노래로 1944년까지 소련 국가)를 불렀다. 그리고 당 정관 4조는 토니 블레어가 1995년 삭제할 때까지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와 산업의 “민중 통제”를 약속했다(코빈이 이걸 되살리려 노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에 관한 한 사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실용주의적 경영자들에게 좀 더 길을 내주기 위해 신속히 노선을 변경했다.

블레어가 친구인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본을 받아 ‘제3의 길’을 내세우며 총리가 됐을 때 사회주의는 사망 선고를 받고 매장된 듯했다. 다른 이상한 앵글로-아메리칸 커플이었던 로널드 레이건과 마가렛 대처에 이어 권력자가 된 클린턴과 블레어는 사회민주주의의 구조를 해체하려 했다. 애틀리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타협을 하면서 말이다.

클린턴과 블레어는 사회ㆍ경제적으로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필요한 관심을 월가와 런던 그리고 어떤 수상쩍은 지역의 배부른 자본가들의 꼴사나운 헌신과 결합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블레어는 이탈리아의 금권정치가이자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휴가를 함께 보냈다. 클린턴은 부유한 친구들이 정의를 피해가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의 사면 권한을 이용했다. 그리고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뒤 두 사람은 재빨리 자신들의 명성을 은행 계좌를 불리는 데 사용했다.

자본주의와 지나치게 타협하는 건 중도 노선 지도자들의 체면을 구기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코빈 체제 아래서 극좌파가 반격해 마침내 가까스로 타협하는 자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은 단 하나의 이유도 그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코빈은 간절히 기다리던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고 민중의 ‘진정한’ 목소리다. 별다른 이데올로기도 없었던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진짜 사회주의자를 만나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힐러리 클린턴도 내년 대선의 민주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비슷하게 혼쭐날까. 그가 대표하는 중도 좌파는 당 내 주도권을 뺏길까. 최근 여론 조사에서 힐러리의 주요 경쟁자이자 자랑스럽게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버니 샌더스는 힐러리를 거의 따라잡고 있다. 게다가 일부 주에서는 힐러리를 앞서고 있다. 코빈처럼 샌더스에게도 진정성 있는 태도가 있다. 워싱턴의 주류 정치인들처럼 대본에 짠 대로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말한다.

하지만 샌더스를 포함해 민주당에는 코빈 추종자들처럼 강경한 당원이 약간이라도 남아 있지 않다. 코빈과 비교하면 샌더스는 중도파다. 더 중요한 건 강경파가 영국 노동당에서 했던 걸 지금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에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공화당 내의 반대 세력은 샌더스는 말할 것 없고 코빈보다 훨씬 극단적인 듯하다. 공화당은 정치에서 타협하는 걸 악랄한 배반이라 여기는 광적인 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위험에 처해 있다. 극단적 보수주의자인 존 베이너에게 너무 무르다며 하원의장직을 내려놓으라고 강요하는 건 공화당원들이 자신들의 당과 전쟁을 하자는 것이다. 공화당을 대표해 대선 후보가 되려는 이들 대부분은 극단적일 뿐만 아니라 코빈보다 반동적이다.

‘미국을 되돌리자’느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등 그들이 선호하는 구호는 뉴딜정책이나 시민권 확대가 정직한 기독교도 백인의 평화를 가로막지 않던 시절을 염원하는 것이다. 이런 극우 공화당원들은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실제로 그들은 그 어떤 것보다 진정성을 중요시 한다(그래서 도널드 트럼프가 통하는 거다). 그리고 그들은 당 지도부가 단지 지배하려 하는 것만으로 체면을 구겼다며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누가 뽑힐지 예측하긴 너무 이르다. 테드 크루즈 같은 강경노선자나 벤 카슨처럼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왕초보가 뽑힐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이 높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당 대표로 뽑히는 건 대통령에 뽑히는 것보다 훨씬 쉽다. 영국에서도 코빈이 총리가 될 거라고 확신하는 이가 많지 않다. 노동당이 좌절에 빠져 있는 이유다.

선거운동에서 아직 죽을 쑤고 있는데다 진정성 없고 심지어 노골적으로 교활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은 아마도 민주당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결국 후보 경선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힐러리의 관점이 영국 노동당 중도좌파 정치인들의 그것보다 믿음직해서가 아니라 경쟁자들이 그보다 훨씬 나빠 보이기 때문이다.

이언 부르마 미국 바드칼리지 교수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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