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점 반영 최대 15점 밖에 안돼
저신용자 등급 오르기 어려운 구조
금융당국 “최대 708만명 혜택” 장담 무색
“현장에 눈감은 전시성 정책” 지적
지난해 말 입사한 직장인 A씨는 올초 통신ㆍ공공요금을 6개월 이상 성실히 납부하면 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관련 서류를 신용평가사에 제출했다. 조만간 결혼을 앞두고 돈 쓸 일이 많아 신용평가등급을 올려 금리 인하 효과를 보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신용평가사에서 온 답변은 신용평가점수는 조금 올랐으나 신용등급은 그대로라는 것이었다.
금융당국이 휴대전화 요금이나 공공요금 등을 성실히 납부한 경우 개인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다며 관련 정책을 도입했으나 정작 신용등급이 상승한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드러났다. 성실납부실적이 신용평점을 올릴 수는 있지만 반영 점수가 최대 15점에 불과해 등급 상승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탓이다. 최소 212만명에서 최대 708만명의 신용등급이 상승해 수조원대 이자비용이 절감될 것이라는 금융당국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불합리한 개인신용평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통신ㆍ공공요금 성실납부실적 등 비금융거래정보를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실행방안을 지난 1월 21일부터 시행했다.
그러나 기대대로 신용등급이 상승한 이는 거의 없다.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6,000명 이상이 통신요금 납부실적을 제출해 88% 가량이 신용평점이 상승했지만, 정작 대출금리 결정과 직결되는 신용등급이 상승한 경우는 10%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나이스평가정보 역시 지난달 24일까지 731명이 6개월 이상 휴대전화 요금 등을 성실하게 납부한 자료를 제출해 이중 85%인 621명의 점수가 올랐지만 신용등급 상승으로까지 이어진 경우는 10%를 겨우 넘긴 83명에 불과했다.
이는 통신ㆍ공공요금 성실납부실적이 신용등급 상승과 직결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게 신용평가사들의 설명이다.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은 0~1,000점으로 구성된 신용평가점수로 결정되고 등급 간 평점 폭은 30~100점인데, 성실납부실적은 반영 점수가 5~15점에 불과하다. 상위 등급 최소 평점의 바로 밑 평점을 받고 있는 일부만 등급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모 은행 관계자는 “대출여부나 규모,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신용등급”이라며 “평점이 90점이 올라도 등급이 그대로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가산점을 받기 위해 투입하는 번거로움에 비해 효과가 미미해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가산점을 유지하려면 성실납부실적 증빙자료를 매 6개월마다 지속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의 수혜 대상인 저신용자들은 다른 평가요소로 등급을 끌어올릴 여력이 없어 휴대전화 납부실적 등을 제출하는 것인데, 정작 다른 부분에서 평점을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금감원은 신용평가 대상자 약 4,652만명(작년 11월말 기준) 전원이 통신ㆍ공공요금 성실납부실적 정보를 제출해 적정성을 인정받는다고 단순 가정할 경우 최대 708만명(15.2%)의 신용등급이 상승하고, 이 중 30%만 가정해도 약 212만명이 신용등급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불어 신용등급 상승자 708만명이 최대 4조6,000억원의 이자비용을 절감(212만명 시 1조4,000억원)할 수 있다는 추정도 덧붙였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들은 신용평가사 정보와 자체 정보를 비교해 더 낮은 등급을 적용하는 게 기본”이라며 “현장에 대한 조사도 없이 발표한 보여주기 식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금융당국은 정확한 통계 공개를 꺼리며, 아직 정책의 성과를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주장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2~3년 후 통신ㆍ공공요금 성실납부자가 대출 상환도 잘 한다는 등의 유의미성이 통계적으로 입증될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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