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영식
주필

등록 : 2015.05.14 17:44
수정 : 2015.05.15 06:04

[황영식의 세상만사] 고정관념 빠져나오기

등록 : 2015.05.14 17:44
수정 : 2015.05.15 06:04

참이라고 믿던 게 거짓일 수 있어

열린 마음으로 새 사실 수용해야

공무원연금ㆍ한일관계도 마찬가지

철석같이 ‘참(Truth)’이라 믿었던 게 ‘거짓(False)’임을 확인하고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카드 이야기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배운 ‘마이티’란 카드놀이를 지금도 매년 서너 차례는 즐긴다. 그런데도 네 종류의 카드 가운데 한 가지 이름을 잘못 알고 살았다. 스페이드와 다이아몬드, 하트 다음의 나머지 한 종류를 ‘클로버(Clover)’로 여겼다. 그게 클로버가 아닌 ‘클럽(Club)’임을 어제 아침에야 확인했다. 어찌 그리 오랫동안 단순 사실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지 못했는지, 개인적 충격이 컸다.

발견도 우연했다. 스팅(Sting)의 ‘내 마음의 모양(Shape of My Heart)’은 좋은 노래다. 정갈한 멜로디와 기타 반주가 좋아서 즐겨 들었을 뿐 가사에 귀를 기울인 적은 없었다. 귀를 기울여봐야 ‘영어 숙맥’에게 올바로 들릴 리도 없었다. 어느 날 신기하게도 그 가사가 귀에 쑥 들어왔다. 국내외 추억의 노래를 USB 메모리에 담아 차에 꽂아두고 운전할 때마다 들은 게 2년쯤 된 덕분이었을까. ‘난 알아, 스페이드는 병사의 칼이지/ 난 알아, 클럽은 전쟁의 무기지’.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웬 ‘클럽’? 그러나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클럽’이었다. 영어사전을 뒤져 봐야지 하는 생각 자체를 계속 잊었다. 그러다가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그 노래를 다시 들었다. 손이 자유로워 곧바로 핸드폰 영어사전을 뒤졌다. ‘클럽’에 ‘(카드놀이의) 클럽(♣)’이라고 그림까지 나와 있었다. 혹시나 해서 ‘클로버’도 살펴보았지만 토끼풀 얘기뿐이었다.

잠시 멍했던 정신을 추슬러 ‘왜, 어떻게’를 따졌다.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덜려는 정당화 과정이었을 게다. 우선은 카드 문양이 토끼풀을 그린 듯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 마이티 멤버 절반 이상이 ‘영어의 달인’이었는데도 왜 고쳐주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도 들었다. 돌이켜보니 ‘하트’를 빼고는 이름 전체를 제대로 부른 적이 없었다. 스페이드는 ‘스피’, 다이아몬드는 ‘다이’, 클럽은 ‘클’이라고 줄여 불렀으니, 오류를 드러낼 기회조차 없었던 셈이다.

그 다음으로 단순 사실의 착오가 이렇게 찾아 고치기 어려울진대, 판단이나 평가의 착오나 오류야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판단과 평가의 착오, 그리고 그 결과로 빚어진 고정관념에서 빠져 나오려면 결국 단순 사실에 대한 잘못을 바로잡는 수밖에 없으리라고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이 실은 ‘사실의 해석’ 가운데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선택한 데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연한 선택의 결과 고정관념이 일단 자리잡으면 이내 인식의 체로서 기능한다.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위에 올려놓고 흔들어 걸러진 것만 받아들인다. 그 결과 고정관념은 더욱 굳어지고, 무늬나 속살이 다른 이야기는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게 된다.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끊이지 않는 갈등과 대립이 바로 고정관념에서 빚어진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진정한 타협과 화해는 불가능하다.

공무원연금개혁 파탄 퍼포먼스

'청년이 만드는 세상' 회원들이 14일 오전 국회 앞에서 공무원 연금 구조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원연금개혁 파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며칠 전 국립외교원이 연 특별회의 ‘한일관계 50년의 궤적과 그 현재적 교훈’에서는 한일 양국간 과거사 처리의 원점인 한일회담을 진지하게 살폈다. 당시의 ‘6ㆍ3시위’에서 현재까지 ‘경제적 실리 고려에 치우친 회담’이라는 비판이 무성했고, 스스로도 거기에 경도돼 있었다. 독도문제나 위안부 문제를 그때 깔끔히 정리했으면 한일 양국 관계가 지금처럼 불편하고 어정쩡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한일협정의 기본조약이라고 할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서 한국이 당사국이 되지 못해, 제4조(전쟁배상)가 아닌 제14조(청구권 등) 적용 대상국이 되는 순간 ‘과거사 청산 미흡’은 운명이 됐다. 이를 확인하자 당시 정부와 외교협상 주역들에 대한 비난의 심정이 크게 묽어졌다. 한일 관계를 보는 기본 시각에야 별 변화가 없겠지만, 그 동안의 ‘역사 화해’ 노력의 평가에서는 스스로의 작지 않은 변화를 예감한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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