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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보편적 시행, 선택적 부담

입력
2014.11.2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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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봄 처자식과 더불어 일본 연수를 갔다. 아이들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도쿄 변두리에 셋방을 잡았으니 초등학교 3학년 첫째를 도심의 한국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만 3세가 다 된 둘째 아들 보육원 문제도 고민거리였다. 며칠 뒤 동네 초등학교에 들어간 큰 아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오면서 하나하나 시름을 덜 수 있었다. 말도 안 통하는 녀석을 기쁘게 한 것은 급식이었다. 녀석 말대로 ‘무지 맛있는 학교 밥’은 최초의 한국 학생으로서 누렸던 급우들의 환대와 함께 녀석의 안착을 앞당겼다.

▦ 급식비는 월 3,500엔쯤이었다. 얼마 뒤 학교에서 안내문이 날아왔다. 동네 복지사무소에 신청하면 소득수준에 따라 급식비는 물론이고, 운동화나 체육복, 각종 문구나 참고서 등 학부모가 지출한 교육 관련비용 일체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학생의 절반 이상이 그런 혜택을 받고 있으니 꺼릴 것 없다는 ‘참조’도 달려 있었다. 끝내 환급신청을 하지 않았다. 액수가 크지 않아 ‘한국 기자의 자존심’을 지킬 만했던 데다 둘째를 무료로 사립보육원에 보낸 뒤 고마움과 미안함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 공립보육원에 자리가 없어 사립보육원이 배정됐을 때는 보육비 부담을 걱정했다. 그러나 일본 내 소득이 없는 연수기자의 아들 보육비는 0엔으로 책정됐다. 빈부 격차가 컸던 동네여서 월 6만엔이 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도 공사립을 불문하고 보육비는 복지사무소에 내고 사무소가 아이들 숫자대로 한꺼번에 지불했으니, 보육원은 아이들 각각의 보육비를 알지 못했다. 동일한 혜택에는 동일한 비용을 부담하는 형식을 취했다가 나중에 교육비 환급에 차별을 두는 것과 절차만 달랐지, 실질은 똑 같았다.

▦ 두 아들이 일본에서 누렸거나 누릴 뻔한 혜택은 보편적 시행과 선택적 부담이 특징이다. 보편적 복지의 전형이라는 무상급식도 결국 부자들이 더 부담하게 마련인 세금에 의존한다. 보편적 혜택과 선택적 부담을 곧장 결합하는 대신 돌고 돌아 멀리로 이었을 뿐이다. 나라가 모든 국민에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최소 비용을 미리 나눠주는 절대적 보편복지가 아니라면, 모든 부분적 보편복지는 확대된 선택복지와 썩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예산을 둘러싼 여야 갈등처럼 허망한 게 또 없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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