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성
논설실장

등록 : 2016.10.03 20:00
수정 : 2016.10.04 08:51

[이계성 칼럼] “북한 주민 여러분”

등록 : 2016.10.03 20:00
수정 : 2016.10.04 08:51

박 대통령, 남으로 오라고 공개 권유

김정은과 北 주민 분리 실효성 의문

미워도 인정하는 현실적 접근 필요해

강원도 고산군 고산과수종합농장을 현지 지도하는 김정은(조선중앙TV 9월18일 보도).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을 대화나 협상의 상대로 여긴 적이 있을까. 내 생각엔 아닌 것 같다.

201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을 언급한 적은 있다.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고, 남북정상회담도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원론적인 얘기였을 뿐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이라는 구체적 상황을 떠올리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우리 사회 보수진영은 새파랗게 젊은 3대세습 독재자를 남북 정상회담의 파트너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심리가 강하다. 박 대통령도 기본적으로 이런 심리를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애초부터 남북관계의 돌파구로서 정상회담을 생각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얘기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등 핵심적인 대북구상은 북한 체제 인정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한계가 있다.

박 대통령이 이번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에게 “대한민국으로 오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한 것은 김정은 불인정과 배척이 갈 데까지 갔음을 뜻한다. 나아가 북한 정권의 도발과 반인륜적 통치가 종식될 수 있도록 “북한 주민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알리겠다고도 했다. 대북확성기 방송 확대, 대북 전단 살포 및 라디오 방송 강화는 물론이고 반북단체들 중심으로 이뤄져 온 DVD나 USB 투입을 통해 김정은 정권 붕괴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도 포함된 듯한 뉘앙스다. 야당에서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며 “섬뜩하다”(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는 반응까지 나왔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5차 핵실험과 관련해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 불능”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미친 거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김정은이 광기에 휩싸여 주민들의 삶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고 있는 만큼 그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박 대통령의 기본인식인 것 같다. 폭정, 폭주, 반인륜적 통치, 공포 정치 등 강도 높은 비난용어를 쏟아내기도 했다. 김정은을 협상 상대로 해 무슨 일을 도모해보겠다는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하면 박 대통령에게 핵과 미사일, 인권 등 북한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김정은 정권 붕괴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한층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엘리트층까지 가세하는 탈북 증가 등 북한 내부 동요 조짐 등이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생각을 한층 굳혀주고 있는 것 같다. 이제 확신과 신념 수준에 이른 느낌이다.

하지만 북한 문제를 지나치게 김정은 개인 문제로 몰아가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 싶다. 김정은이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역시 김일성, 김정일 시대를 거치면서 한층 강화된 수령제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김정은 정권 붕괴를 문제의 해결책으로 추구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접근한다지만 얼마나 먹힐지 의심스럽다.

김정은 정권은 오히려 박 대통령의 그 같은 언급을 체제유지에 역이용하고 있다. 해방 후 최악의 수해가 났는데 우리정부가 민간단체의 지원까지 막고 있으니 역선전하기 쉽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위기감을 고조시켜 내부결속 소재로 이용할 게 뻔하다. 우리가 분개하는 핵과 장거리 미사일도 내부결속용으로 십분 활용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보다 체제붕괴를 더 우려하는 중국이 버티는 한 외부 제재와 압박 강화에 의한 김정은 정권 붕괴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남은 1년5개월 동안 김정은 정권 붕괴 압박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계속할 태세다. 대화와 협상을 위한 토대나 근거를 모두 없애버린 마당이니 다른 길이 없기도 하겠지만 이게 한반도를 어떤 위기 상황으로 몰아갈지 걱정스럽다. 아무리 변덕스러워도 김정은은 북한이라는 나라를 이끄는 최고지도자 위치에 있다. 압박을 하든 협상을 하든 이를 인정하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계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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