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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창조과학

입력
2017.08.3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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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사제와 과학자의 창조ㆍ진화 논쟁의 역사는 150여년을 헤아린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듬해 영국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와 새뮤얼 윌버포스 성공회 옥스퍼드 교구 부주교가 포문을 연 이 논쟁사의 주목할 만한 최근 사례는 리처드 도킨스와 로완 윌리엄스의 맞대결이었다. 전투적으로 무신론을 설파하는 진화생물학자와 영국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의 2012, 2013년 두 차례 논쟁은 하지만 익히 알려진 생각 차이를 확인하는 수준의 밋밋한 토론이었다.

▦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킨스의 공격적인 질문에 대한 윌리엄스의 대답이었다. 도킨스가 “왜 신처럼 혼란스러운 존재에 모든 걸 귀속시키느냐”고 따지자 윌리엄스는 “신은 혼란스럽지 않다”면서 “사랑과 수학의 결합체로 부르자”고 했다. 도킨스는 “과학은 우주에 대한 여러 질문에 답을 내놨는데 왜 ‘창세기’를 21세기 과학에 맞춰 재해석하느라 시간 낭비를 하냐”고 하자 “성경을 쓴 사람들은 21세기 물리학의 영감을 받은 이들이 아니라 성경 독자들이 알았으면 하는 신의 바람을 전하는 데 영감을 얻은 이들”이라고 답했다. 윌리엄스는 “인류는 인류와 다른 조상에게서 진화했으나 그 과정은 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 기독교의 창조론이 과학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관점 차이나 각각의 역할을 따지는 이런 모양새라면 그다지 눈총 받을 일도 없었을 게다. 하지만 일부 기독교인은 구약 창세기에 맞춰 지구가 약 6,000년 전 6일 만에 만들어졌다느니, 노아의 홍수 이후 지각 변동으로 지금의 대륙이 생겨났다는 등의 주장을 담은 어이 없는 수준의 ‘창조과학론’을 펼친다. 구약을 문자 그대로 맹신하는 이런 움직임은 미국에서 유별나게 강한데, 이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민주당 후보로 지명돼 세 차례나 미 대선에 도전했던 정치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1860~1925)이다.

▦ “종교와 교육 중 하나를 포기하라면 교육을 포기해야 한다”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브라이언은 진화론 교육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도록 부추겼다. 하지만 진화론은 미국 공교육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창조론자들은 반대 소송에서 잇따라 패했다. 미국 기독교 세례를 받은 한국에서도 창조과학론자들이 교과서 소송을 내고 창조과학 전파를 위한 조직적 활동을 벌이려 든다. 브라이언은 미 대통령이 되지 못했지만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나라이니 ‘창조과학 장관’ 정도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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