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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 “촛불이지? 여기 태극기 많아” 노년층 중심 편가르기 심해져

입력
2017.10.28 04:4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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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 상당수

자신이 부정 당했단 생각에 불만

“잠복된 갈등 분출 않게 소통해야”

지난 2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 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왼쪽)와 탄핵을 촉구하는 태극기(오른쪽 팻말 든 사람)가 교차하고 있다. 묘한 긴장도 잠시, 탄핵 촉구 피켓을 보고 격분한 탄핵 반대 측 참가자가 상대방의 태극기를 빼앗으려 들면서 일대 소란이 일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지난 2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 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왼쪽)와 탄핵을 촉구하는 태극기(오른쪽 팻말 든 사람)가 교차하고 있다. 묘한 긴장도 잠시, 탄핵 촉구 피켓을 보고 격분한 탄핵 반대 측 참가자가 상대방의 태극기를 빼앗으려 들면서 일대 소란이 일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촛불집회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기회였던 동시에 상처와 후유증도 남겼다. 촛불이 타오른 광장의 반대편에 서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시민의 상당수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이 부정당한 상처를 잊지 못하며, 사회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물론 촛불집회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과정과 새 정부의 탄생을 지켜보며 생각이 달라진 이들도 없지 않다. 직장인 A(41)씨는 지난 추석 고향을 찾았다가 아버지(76)가 “문재인 대통령이 노인을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안보도 잘 해보려 노력하는 게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A씨는 “지난 겨울 ‘촛불집회 필요 없다, 나라 망친다’며 비판했던 그 아버지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이후 국민과 소통을 잘 하는 정부 분위기를 보면서 아버지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기존의 세대간 갈등은 지속되고 있지만 세대별 정치 성향이 다양해지고 간극이 커지면서 분화되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일방적으로 보수 정치에 충성심을 보이던 고령층 일부가 중도나 진보 진영으로 이동했고, 50대는 진보 성향이 눈에 띄게 늘었다. 20대는 지난 대선을 거치며 문재인 후보뿐만 아니라 심상정, 유승민 지지자로 다양하게 분화했다고 윤 센터장은 진단했다.

하지만 촛불집회와 탄핵에 반대했던 이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불만에 휩싸여 있다. 이런 불만이 자칫 사회 갈등으로 불거질 소지가 있다는 게 문제다. 서울의 한 대학 명예교수인 B(67)씨는 최근 결혼식 주례를 보러 갔다가 한 지인으로부터 “(자네) 촛불이지? 여기 태극기 많아. 말 할 때 신경 좀 쓰는 게 좋을 꺼야”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출신 지역과 평소 주장을 놓고 촛불집회 참가자로 단정짓는 것도 황당했지만 1년이 지나서도 적대적 편가르기가 여전하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촛불집회 이후 노년층을 중심으로 촛불집회 지지자, 태극기집회 지지자로 편을 나누고 날을 세우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특히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자신의 과거가 통째로 부정당했다는 허탈함에 더 공격적으로 바뀐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직장인 C(36)씨는 촛불집회 이후 동료, 친구들로부터 ‘네가 찍은 (박근혜) 후보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 ‘반성 좀 해라’ 같은 비판과 핀잔에 괴롭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던 나 자신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있다. 하지만 큰 죄를 지은 사람 취급을 받을 때면 저도 ‘두고 보자. 문재인 정부라고 얼마나 다르겠어?’ 하는 반발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D(46)씨도 “친구 모임에 나가면 한국당이나 바른정당에 우호적인 이야기는 전혀 못한다. 그런 얘기를 하면 비난하는 분위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시민들이 순수하게 의사를 표출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돼 문제가 많다”는 E(58)씨는 “촛불집회 이후 사회가 더 양분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좌우로 갈려 서로 물어뜯는 이런 상황에서 나라가 잘 되겠나. 정부가 이런 갈등을 아우르는 리더십을 보이지 못해 갑갑하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 F(28)씨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들추려는 태도가 촛불집회를 반대했던 나 같은 사람들을 다 적폐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처럼 일자리, 경제 등 먹고 사는 문제에 에너지를 더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불만의 목소리를 최대한 들어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촛불집회를 반대했던 사람들을 ‘과거에만 집착하는 꼰대’라거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식으로 비판만 하기보다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보는지 다양한 의견을 듣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박 교수는 “잠복된 갈등이 분출하지 않도록 촛불집회가 만든 소통과 공유의 정신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김주은 인턴기자(고려대 컴퓨터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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